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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8

삐뚤어진 사랑도 치료가 될까요?

Editor. 이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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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문예출판사

주변에서 잘못된 애착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부모, 매 순간 나만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애인 등등. 우리는 이런 애착을 흔히 ‘삐뚤어진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의 기술』을 쓴 소위 ‘사랑 전문가’ 프롬은 이러한 현대인의 사랑의 병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현대인의 사랑이 하나의 팀Team으로서의 계약관계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남편과 아내가 한 팀이 되어 서로를 위한 동맹을 맺는다. 남편은 아내가 새 옷을 입으면 예쁘다고 칭찬하고 아내가 해준 요리에 대해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울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아내는 남편이 사회생활로 지쳐 시무룩해 있으면 위로할 줄 알아야 하며 자기 생일을 잊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롬은 이러한 관계는 서로의 분리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는, 사실은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로 이루어진 것인데 흔히 사랑이나 친밀감으로 오해를 받는다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관계가 꼭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는 표현이 거북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프롬은 이러한 관계의 피상성을 비판하며 자본의 흐름에 맞춰 행동양식이 정해져 있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만을 절대적 종교로 숭배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롬은 나아가 이러한 사랑의 병리가 심해지면 신경증으로 번지기도 한다면서 흥미로운 예시들을 제시한다.
첫 번째 신경증적 사랑의 유형은 보호, 사랑, 따뜻함, 배려, 칭찬으로 대표되는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을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바라는 경우이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유형이 성공적인 정치가에서 흔히 보인다는 것이다. 성공한 정치가 중 많은 사람이 보통 어머니의 과잉보호 속에 자라나 어머니와 비슷한 타입의 헌신적이면서 항상 자신을 받들어주는 아내를 찾아내어 안착한다. 그들은 보통 상당한 허영심과 과장된 관념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무책임한 경우가 많지만, 헌신적인 어머니와 아내를 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즉 겉으로는 일과 가정 모두에서 성공한 인물로 사회적 부러움을 사지만 사실은 잘못된 애착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성공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보통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행한 결말을 맺기 쉽다.
반대로 아버지상에 집착하는 경우도 흥미롭다. 아버지의 권위적인 모습을 동경하고 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온 사람의 경우 보통 배우자에게(프롬은 남성의 예시를 많이 들었다) 무심하다. 처음에는 남성적인 성격 덕분에 여자들의 호감을 사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의 관심 대상이 항상 외부에 있어 정작 자신은 부차적인 존재라는 것을 상대방이 깨닫고 나면 서로 실망하는 관계가 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로 나누어 사랑의 성질을 구분하고 부모로부터 받은 애착에 원인을 돌리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관련이 깊다. 프롬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지배했던 부모의 애착은 다소 병적인 것이었다. 유대인이었던 프롬의 아버지는 와인 상인이었던 그의 직업 때문에 항상 열등감에 시달렸고 아들이 유대 신학자의 계보를 잇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그를 과잉보호하며 키웠고 그가 밖에 나갔다가 혹시 감기에라도 걸릴까 봐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잦을 정도였다.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로 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걸면서 아들의 능력에 대해 이상화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런 어머니의 시선 속에서 프롬 또한 자기 자신에게 과도하게 도취된 거만한 아이로 자랐다.
프롬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이유는 그가 부모로부터 받은 잘못된 애착들을 자신의 나머지 인생에 걸쳐 끊임없이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했으며, 결국 그것에 성공하여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롬은 사랑 전문가답게(?) 수많은 파트너를 거쳤고 그중 결혼한 사람만 3명이었다. 이 중 많은 관계가 그가 내면화한 잘못된 아버지, 어머니상에 의해 불행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알을 깨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고, 결국 50세가 넘어서 만난 세 번째 배우자와 비로소 나 자신과 상대방을 다치게 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랑의 기술』도 이 여성을 만나 결혼한 뒤 저술한 것이다. 『사랑의 기술』은 그의 이러한 노력의 산실이다. 그는 수많은 사랑을 경험한 로맨티스트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내면화한 부정적인 자아에서 평생을 허덕였던 ‘환자’이기도 했다. 사랑에 실패하고 자신을 미워해본 적 있는 이들이여, 이 책을 읽고 새롭게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