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빛이 있는 곳에 그늘이 필요한 법 아랍에미리트 지혜의 집

에디터. 서예람 사진. © Chris Goldstraw 자료제공. Foster and Partners

함께 만든 ‘지혜의 집Bayt al-Hikma’ 때문이다. 지혜의 집은 제국이 국가적으로 후원한 번역 기구이자 도서관, 연구소였다. 14세기 유럽 르네상스는 지혜의 집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었던 옛 그리스의 학문과 문명에 대한 문서들이 라틴어로 재번역되는 역수입 과정을 통해 가능했다. 당시이 도서관이 소장한 장서가 40만 권에 일렀다고 하니, 그 규모는 상당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도서관은 이 고대 도서관의 이름을 계승한 아랍에미리트의 ‘지혜의 집’이다.
석유 보유국, 돈 많은 나라로 흔히 알려진 아랍에미리트. 페르시아 만 근처 지역은 해안선이 복잡한 바닷가를 접하고 있지만, 국토 대부분은 고온 건조한 사막 지대다. 1년 내내 더운 이곳의 여름철 평균 최고기온은 40°C가 넘고, 기록된 최고기온은 50°C에 육박한다. 비교적 선선한 겨울철에도 최저기온이 평균 12°C, 최고기온 평균 25°C 정도로, 우리나라 5월 정도의 기온이다. 지혜의 집이 위치한 샤르자는 관광지로서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나,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이어 아랍에미리트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아랍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에서는 1982년부터 매년 샤르자 국제도서전이 개최되고 있다. 지혜의 집은 샤르자가 2019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 책의 수도’가 되면서 그를 기념하며 지어진 도서관이다.
샤르자 국제공항으로 뚫린 도로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도심지로부터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다. 외벽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밝고 환한 느낌을 주지만, 뜨거운 중동의 햇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창문은 이곳 기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건물 밖으로 15m 돌출된 널따란 지붕이 필요했다. 지붕 덕에 멀리서는 건물이 낮고 넓게 퍼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공간은 정방형으로 네모반듯하게 조성되어 있다. 커다란 모자챙처럼 건물을 드리우는 지붕 그림자는 거의 하루 종일 내부로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게 막아준다. 거기다 간격과 밀도가 다른 알루미늄 창문살이 설치되어 저녁나절에는 건물 수평선상에 가깝도록 낮게 깔리는 햇볕을 가려준다. 1층 창문에는 열고 닫히는 대나무 창문살이 있어 이용자의 편의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이 지붕은 네 개의 두꺼운 중심 기둥에 의해 지탱되는데, 이 기둥 역시 관리실이나 복지 공간으로 활용된다. 거대한 기둥들이 대칭적으로 지붕을 지탱하기 때문에 공간 내부에는 부가적인 다른 기둥이 필요 없다. 그 덕분에 도서관 전체는 2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마루처럼 보인다. 정문에 가까운 두 기둥에는 중층으로 이어진 층계가 설치되어 있다. 2층에는 중앙 안뜰을 둘러서 여러 자투리 공간들이 있어 다채로운 분위기다. 전시공간이나 열람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도실, 그리고 여성 전용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건물 디자인 전체가 외부환경과의 연결감을 강조하고, 건물을 둘러싼 정원이 눈에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북서쪽 정문으로 들어서면 2층까지 탁 트여 있는 리셉션 공간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 정면에 건물 중앙의 안뜰이 보인다. 안뜰에 무성하게 자라난 녹색 공간은 자연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더하고, 천장에도 창이 나 있어 건물 안으로 적당한 빛을 들인다. 1층을 쭉 돌아보면 눈에 들어오는 바깥 풍광은 크게 둘로 나뉜다. 남쪽에 조성된 지식의 정원과 어린이 놀이터에는 몇 가지 토종 식생과 분수가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정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영국의 설치미술가 제리주다Jerry Judah가 만든 공공미술 작품 〈두루마리The Scroll〉가 자리하고 있다. 고대 아랍의 두루마리 책을 하늘을 향해 휘감아가는 나선형 조각으로 재해석한 현대 미술작품이다.
“지역 커뮤니티의 오아시스”로 설계된 이곳은 현대 도서관다운 성격을 가지면서도 학문과 연구, 즉 책을 중심으로 한다. 소장하고 있는 실물 책은 105,000권 정도이며, 멤버십에 따라 대출과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학술적 연구를 위해 이용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이와 별개로 누구나 책을 열람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의 성격은 1층에서 특히 드러난다. 5분 만에 뚝딱 책을 인쇄하고 제본해주는 ‘에스프레소 북 머신’ 같은 기기도 있고, 전시 공간과 카페,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운영시간이 무려 아침 9시부터 밤 11시, 주말에는 자정까지라는점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이곳이야말로 ‘지혜의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공간이 아닐까.
June22_SpecialReport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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