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August, 2015

불편한 독서

Editor. 유대란

최근 책장 정리를 했다. 크기별 혹은 제목순으로 분류할까 하다가 두 가지로 분류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으로. 불편하다고 해서 난이도가 높은 책을 말하는 건 아니고 그보다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외면하던 것들을 펼쳐 보여주고, 잊고 있었던 의심을 끄집어내거나 존재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는 그런 것들이다. 이런 책은 안온했던 시선에 찬물을 확 끼얹는다. 먹고 사는 게 절체절명의 미션이라는 편리하지만 패배주의적인 변명을 초라하게 만들어서 속을 긁는다. 그런데 혹시 이런 속 쓰린 독서를 굳이 왜 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초중복날 고열량 메뉴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걸로 인생 만족도의 유일한 지표로 삼을 수 있냐고 반문할 수밖에. 그리고 자학에도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걸 아느냐고….

『카페 림보』 김한민 지음
워크룸프레스

“4:19 그들 사이에서 사는 법은 그들을 흉내 내는 것. 눈 감고, 귀 닫고, 배 채우고, 트림하는 삶. 4:20 그렇게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여! 당장 일어나라! 각성의 날이 무뎌지면 치명적인 귀찮음 병이 도지니.” —본문 중
내 추측은 이렇다. 당신이 시집(장가) 잘 갔다는 친구에게 보여줘도 꿀리지 않는 배우자를 만나 광고 속에 등장하는 얼음정수기와 스팀 빨래가 된다는 대형 세탁기가 들어선 주거공간을 꾸리고, 출산 적령기의 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 번식을 하고 자녀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도 사교육비에 쪼들리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을 이어가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면, 유기농과 ‘에코’ 딱지가 붙은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전지구적 수준의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의심’ 같은 건 어린 애들이나 ‘열폭분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군가 왜 더 이상 어떤 것에도 의구심을 갖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 ‘먹고 사느라 바빠서’ ‘어차피 변할 건 없잖아’ 중 하나가 유일하게 떠오르는 답변이라면, 지금,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유별난 불만도, 할 말도 없다면 이 책은 둘 중 하나다. 당신의 심기를 아주 불편하게 하거나, 당신이 애초 관심을 두지 않을 책이거나. 이 책은 이런 이들을 징그러운 바퀴벌레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카페 림보』에는 대세라면 스타일, 신념, 감성도 갈아치울 수 있고 거기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바퀴족이 나온다. 다행히도 희귀하긴 하지만 바퀴족에 대항하는 림보족이 남아 있다. 이들은 “곧 죽어도 ‘내가 되어야만 하는 족속’, 소속과 정체성을 거부하고 ‘그냥 있을’ 자유, 싫어하는 걸 싫어할 수 있는 감수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다. 여섯 명의 림보는 바퀴족에게 전쟁을 선포하는데 단, 기한이 있다. 34살이 되기 전에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후에는 바퀴족이 되든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바퀴족이 득세한 이곳에서 소득도, 소속도 증명할 수 없고 상대방이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벌이는 전쟁은 애초림보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림보는 실패한다. 하지만 심보선 시인이 서평에 쓴 것처럼 “누군가 그 싸움에서 계속해서 지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잔존하는 희망이라는 사실을보여준다.” ‘그 싸움’은 림보와 바퀴 간의 싸움이자 ‘나’와 ‘내 자신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모든 것’ 간의 대립이다. 이 책은 ‘나로 살고자 하는’ 희망, 이 사회에서 희박해 보이는 이런 희망을 얼만큼 물고 늘어질 수 있는지, 보이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어디까지 좇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니까 당신이 림보인지 바퀴인지.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 편집부 지음
프로파간다

12.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한 목사가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에 미등록 사무실을 마련하고 인턴 직원을 고용해 조직적인 댓글 작업을 벌인 일명 십알단 사건이 있었다. 여기서 ‘십알단’은 무슨 의미인지 아래 보기에서 골라라. (1점)
① ‘십덕후 알러뷰 응원단’의 줄임말
② ‘십자군 알바단’의 줄임말
③ ‘십장생 알짜 군단’의 줄임말
④ SAT(암호 ‘함정 개조 팀’의 영어 ‘Ship Alternation Team’)의 한국식 이니셜 —‘부정선거 고사 문제지’ 중
대한민국의 부정선거는 끈질긴 역사와 보편성을 자랑한다. 마치 길모퉁이를 돌면 등장하는 보도블럭 공사처럼 흔하고 잦아서 별로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 됐다. 다행히 그리고 시기 적절하게 이런 책이 나왔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 이 책은 건국 이래 자행된 부정선거의 사례와 기법, 인물을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3.15 부정선거부터 최근 국정원 대선 개입까지, 1956년 ‘정읍 환표 사건’을 폭로한 박재표 순경부터 2012년 대선 직전 사이버 여론전에 뛰어들어 지난 5월 유죄판결을 받은 이태하 전 심리전단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피아노표’ ‘쌍가락지표’ ‘다리미표’ 등 이름부터 깜찍한 부정선거 기법들을 ‘에센스’만 모은 짤막한 장들로 구성했다. 일목요연한 편집, 사용설명서에 나올 법한 일러스트, 손바닥만 한 판형은 프로파간다에서 나온 다른 책들과 일관되게 실용성과 단순미를 지닌다.
이 책은 제목대로 요점만 모아놓은 참고서만치 건조하고 무뚝뚝한 체로 쓰였다. 책 후반에는 학습을 도울 4지선 다형의 ‘부정선거 고사 문제지’가 등장한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발칙, 통쾌한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패기와 유희만으로 수식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책을 만드는 것이 패기를 필요로 한 일로 여겨지는 현재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책의 목적이 아닐까. 이 책은 또 외면할 수 없는 과제를 독자에게 할당한다. 책의 끄트머리에 달하면 부정선거의 일시, 장소, 내용을 기록할 수 있는 노트와 신고전화번호를 제공하는데 이게 무슨 뜻이겠나. 알았으면 실천하라는 뜻일 테지.

『감응의 건축』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유년기를 영국에서 보낸 내게 한국은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었다. 변두리의 양옥과 교외의 비닐하우스, 양철지붕이 흉물스러웠고 도심에서 인상적인 거라곤 난폭운전을일삼는 버스와 택시들이었다. 심지어 한글폰트로 이루어진 간판도 어느 것 하나 그럴싸해 보이는 것이 없고, 복잡하고 어려운 존댓말 체계가 불편해서 한글이 열등한 언어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내게 한국은 총체적으로 촌스럽고 시대역행적이며 부끄러운 곳이었다. 물건에 비유하자면 ‘새마을 운동’이 쓰인 초록색 모자와 탐욕스러운 복부인이 들고 다닐법한인조 악어가죽 가방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국이 무조건 미웠다.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열등감이라는 걸 자각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우연히 정기용 선생과 한창기 선생의 책을 보게 된 후 ‘통으로’ 미워했던 한국이 새롭게 보였다.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은 부끄럽게 생각하던 한국 시골에 대한 생각을 바꿔놨다. 아니,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전환시켰다. 그가 무주에 내려가 공공건축물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10년 동안을 정리한 책이다. 정기용은 무주의 마을회관, 박물관, 천문대, 납골당, 버스정류장 등 30여 개의 공공공간을 짓고 개선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무주의 자연과 지난했던 역사를 거치며 해체되고 붕괴되고 있는 시골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저자는 근대화에 동원됐지만 결과적으로 소외되어온 시골과 남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 할 것인지,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자기부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고민한다. 그는 현대의 건축가가 ‘소셜 코디네이터(사회적 조정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훌륭한 소셜 코디네이터로서 지역주민들과 교류하며 건축가나 행정가가 보지 못하는,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했다. 그렇게 해서 공중목욕탕이 있는 면사무소를 짓고 사람들이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을 짓는다.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얻은 것은 이런 정기용의 태도였다. 촌스럽고 시대역행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들, 실로 일면 그러한 것들이라도 거기에 삶이 항상 존재해왔고 위대하든 불행하든 그만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매순간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객쩍어 보이는 어느 무엇 하나 하찮게 바라볼 수 없다. 이것이 예쁜 구석 하나 없던 이 도시를 궁금해하고 그러다 좋아하게 된 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