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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7

불멸의 초대장을 받은 2070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Editor. 한진우(메디치미디어 편집자)

새해 들어 금연을 결심했지만 16시간 만에 “마약 중독자를 얕보지 마!”라고 외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연의 대가로 구입했던 플스VR을 아내가 팔아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리갭의 샘물』 나탈리 배비트 지음
대교출판 『슬픈 불멸주의자』 셸던 솔로몬 외 2명 지음
흐름출판

당신은 2017년에 조금 무리해서 VR이라는 것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가상세계 경험을 하게 됐죠. 일요일 밤에는 핀란드의 어느 들판에 누워 잔잔한 음악과 함께 밤하늘 가득 펼쳐진 은하수를 감상했습니다. 물론 월요병을 쫓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주말에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미국 외딴 시골 저택에 쳐들어가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거나, 아우디를 몰고 싱가폴의 서킷을 시속 250km로 내달렸습니다.
가상세계가 발전하는 사이에 다른 한쪽에서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소가 인간 뇌를 모방한 ‘신경 인터넷 CPU’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뇌에 메모리칩을 삽입해 기억력을 증진하는 실험도 진행했죠. 그로부터 대략 50년 후, 당신이 사는 2070년에는 인간의 기억과 연산능력을 그대로 모방한 담뱃갑 크기의 ‘전자 두뇌’가 개발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뇌가 곧 ‘나라는 존재’라고 가정했을 때, 기억과 감정, 사고와 의지를 가로×세로 8cm 크기의 칩 안에 담는 기술을 인류는 손에 넣었습니다. 담뱃갑 크기의 칩은 VR 기술과 만나 거의 완벽한 가상세계와 그 속의 ‘나’를 구현했겠죠. 노화, 암, 음주운전자, 개 같은 정치인 따위가 없습니다. 즉 죽음이 없다는 뜻이죠. 그날이 오면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고, 나는 과연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말이죠.
어니스트의 해골과 도킨스의 밈이 만났을 때
어렸을 적에 읽은 동화 『트리캡의 샘물』 이야기를 잠시 해봅시다. 이 책은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당신에게 ‘영원한 삶은 저주인가, 축복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때로는 천진난만한 동화 속에 수천 년에 이르는 인류의 고민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당신은 주위 사람들에게 “가상세계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가”라고 묻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죠.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이 인간을 진보케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이 인간을 진보케 한다’고 믿는 이들은 미래를 후손에게 맡기고 소신대로 죽었을까요? 현재를 사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죽음과 필멸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한 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공포 관리 이론이 돋보이는 『슬픈 불멸주의자』이죠. ‘필멸의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종교·경제·과학·예술의 측면에서 조명한 책입니다. 저자들은 실험집단에게 언젠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통제집단에게는 별다른 메시지를 주지 않고 실험을 설계하여, 500건이 넘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죽음의 공포’가 소비, 투표, 재판, 자선활동, 애국심 등 인간의 판단과 활동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동기라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죽음과 인류의 진보·이타적 사고를 밈meme으로 설명했다면 셸던 솔로몬은 이를 심리학이라는 이름의 과학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물론 훗날 인류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원동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은 반대로 불멸을 손에 넣기 전까지만 유효하다는 것이 증명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셸던 솔로몬이 잘못 짚은 것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필멸에서 불멸로 가는 과정 또한 무수히 많은 이기적 유전자의 헌신과 불멸주의자들의 슬픈 운명 덕분일 테니까요.
인류가 유년기의 끝을 맞이했을 때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과학 기술에 힘입어 필멸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때가 분명히 옵니다. 만약 당신이 ‘불멸의 초대장’을 받고 망설이고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단순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당신과 동료들이 남긴 유산을 믿고 후대에게 세상을 넘기세요. 반면에 아직 당신 자신과 인류를 위해 더 할 일이 남아 있다면 불멸의 초대에 응해보십시오. 미래의 나인 당신이 죽음의 지평선 너머에서 뭔가를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