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Report

북극, 『북극 허풍담』천진한 영웅들의 차가운 세계

에디터. 지은경 / 그림. 블레이즈 드루먼드 / 자료제공.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 Blaise Drummond

“그에게 북극은 영웅들의 세계였다. 불굴의 사내들이 두꺼운 모피를 두르고, 지도 위에 하얗게 남은 지점들을 목숨을 걸고 정복해 나가는 곳이었다. 그린란드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그린란드는 썰매 개와 떠나는 긴 여행이었고, 전설적인 곰 사냥이자 바다코끼리 사냥이었다. 순진무구한 에스키모와의 황홀한 만남이었고, 생사를 초월한 탐험가들의 완전무결한 우정이었다. 안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위대한 개척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키웠다.” _「흰멧새」 『북극 허풍담 2』 중
소설 『북극 허풍담』은 지극히 생소한 북극, 그린란드의 자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대자연은 사나운 날씨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거친 사냥꾼들이 겪을 법한 혹독한 현실로 독자를 밀어 넣고는 그 안에서 겨울철 극야와 여름철 새하얗게 지속되는 백야를 살게 하는가 하면, 아찔하고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야기들을 겪게 한다. 여행은 고되고 무겁고 춥다. 하지만 동시에 진정으로 통쾌한 웃음을 선물한다.
『북극 허풍담』 속 북극 여행에 앞서 작가의 모험가적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책을 쓴 작가 요른 릴Jørn Riel은 1931년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19세가 되던 1950년, 그는 덴마크의 탐험가 라우게 코크Lauge Koch박사를 따라 그린란드 북동부로 원정을 나섰다. 그리고 북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곳에서 자그마치 16년의 세월을 보낸다. 당시 릴은 거친 사냥꾼들 사이에서 생활했는데, 그들과 지내면서 듣는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로웠던 나머지 틈틈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극적인 순간들이 진실인지 허풍인지조차 알 길이 없었지만 말이다. 북극의 겨울에 갇혀 긴 시간을 함께 보며 사냥꾼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그 노트는 1년마다 보급선을 타고 와서 책을 팔던 어느 상인의 눈에 띄었고, 덴마크의 한 출판사에 보내졌다. 출판된 책은 덴마크에서만 25만 부가 팔렸고 전 세계 15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후 ‘허풍담’이라는 고유한 장르가 탄생할 만큼 인기를 끈 이 책은, 모험가를 꿈꾸던 요른 릴을 작가의 길로 인도했다.
소설이 일러주는 북극의 자연은 냉혹하다. 추위는 자비 없이 몰아치고, 목숨을 건 사투가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도 부지기 수다. 경이로운 빙하의 풍경에 취해 항해하다가 빙하 위에 고립되어 북극해를 떠돌고, 북극곰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식이다. 게다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1년에 딱 한 번 찾아오는 보급선이며, 개 썰매로 밤낮없이 이동해야 비로소 동료 사냥꾼들을 만날 수 있는 탓에 외로움은 여느 재해보다도 매섭게 들이닥친다. 상상 속에서 긴긴밤을 달래 줄 애인을 만들었다가 그녀로 인해 상실감에 빠지며, 동물 친구와의 우정으로 기쁨을 느끼지만 곧 서글픈 이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냥꾼들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각자의 조국을 떠나 자발적으로 북극을 선택했음에도 가혹한 이곳 날씨 앞에서 우울증을 앓거나 향수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혹독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고독과 죽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고립감이 일상이 되고 순간순간 죽음의 위협을 모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선뜻 밝은 이야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고난과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유쾌하게 이겨낸다. 바로 여기서 그들의 멋진 모험담이 탄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감 없이 전개되는 책 속에서 이들은 오히려 진짜 세상은 북극이고 북극 아래의 세상은 싱겁기 그지없는 형식적인 허울일 뿐이라면서, 위풍당당하게 우리를 북극으로 유혹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써온 역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백을 메우는 일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을 거야. 수다를 떠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될 테고, 배울게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그때는 북극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거야.” _「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북극 허풍담 1』 중
『루이 비통 트래블 북』 〈북극〉 속에는 빙하 위에 자리 잡은 집들과 그곳을 누비는 사람들의 일상 및 다채로운 동식물의 모습이 담겨있다. 수채화 물감이나 색연필로 그린 그림에 모눈종이와 목재 패턴의 종이, 골판지나 포장지를 덧대어 표현한 집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보는 재미를 더하는 것은 물론, 집 안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종이를 그대로 남겨둔 새하얀 바탕은 그 자체로 눈이 쌓인 풍경처럼 아름답다. 최소한의 표현만으로 북극의 겨울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책 속에 등장하는 섬세한 동식물 스케치들은 북극의 사계절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보여준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북극에서의 1년을 경험한 듯싶어진다. 『북극 허풍담』이 1950년대 북극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 그림책은 현대의 북극을 묘사한다. 따라서 그림 속에는 두꺼운 털 옷을 입은 사냥꾼 대신 기능적인 합성섬유로 만든,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눈부시게 하얀 빙하와 북극의 바다, 북쪽 지방 특유의 단순한 집들, 그리고 각종 동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는 북극의 깨끗한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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