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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February, 2016

복면이 뭐라고

Editor. 유대란

『브이 포 벤데타』 앨런 무어 지음
시공사

영국에서는 매년 11월 5일이 되면 전역에서 불꽃놀이가 열린다. 1605년 11월 5일 가이 포크스가 가톨릭 탄압과 폭정에 저항하여 의사당을 폭파하려 했던 ‘화약음모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고 가이 포크스는 이듬해 1월 처형당했다. 당시 왕실에서는 왕의 무사함을 축하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했으나, 훗날 사람들이 가이 포크스의 실패를 안타까워하며 불꽃놀이를 한 것이 ‘가이 포크스 데이’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긴 수염이 그려진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축제를 즐기게 되었다.
앨런 무어가 1982년에 지은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브이’ 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있다. ‘브이’는 핵전쟁 이후 파시스트들이 지배하는 영국 전체주의 정부의 면밀하면서도 폭력적인 지배체제를 전복시키는 인물이다. 그는 모습을 끝끝내 드러내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에 동조하는 수만 명의 사람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행진한다. 그는 ‘브이’ 한 사람이기도 하면서 변화를 일궈낸 익명의 모두가 되기도 한다. ‘브이’의 제자 ‘이비’ 는 그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나의 엄마였고, 아빠였고, 오빠였고, 친구였고, 당신이기도 했으며, 저이기도 했지요. 그는 우리 모두였어요.” ‘브이’는 때로 폭력 앞에선 폭력의 행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무정부주의자이지만, 그의 존재를 호전적 정치의식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브이’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읊으며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며 세상을 조롱한다. 20세기의 혁명의 장에서 17세기 연극 복장을 하고 비극 속 대사를 달달 외는 그는 투쟁을 유희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2005년 이 책이 영화로 제작된 후, 가이 포크스 가면은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가면은 세계 어디든 시위가 있는 곳이면 발견된다. ‘국민이 정부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브이’의 말대로 그것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어가 되었다. 그러니 가이 포크스이든, 하회탈이든, 마스크 팩이든 그것을 벗긴다 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 그 아래는, ‘브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살flesh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 아래는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 생각은 파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