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Report

미국 뉴욕, 『장미의 이름은 장미』빛을 바라보는 법

에디터. 윤이나 / 그림. 장-필립 델롬므 / 자료제공.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 Jean-Philippe Delhomme

2년 전, 모두가 2020년 새해를 기다리던 12월의 마지막 밤. 뉴욕 타임스퀘어에는 15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사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새해만이 아니었다. 자정에 열릴 한국의 7인조 그룹 BTS의 새해 전야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준비를 마친 멤버들이 타임스퀘어 중앙 야외무대로 올라오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곧이어 공연이 시작됐다. 색색의 전광판을 배경으로 그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군무를 펼쳤고, 현지 팬들은 하나가 되어 노래를 따라불렀다. 수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도시 뉴욕,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스타의 모습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듯 보였다. 이처럼 세계 경제, 문화, 패션 등의 최첨단이 응집된 뉴욕, 그곳에서의 시간은 그저 황홀할 것만 같은 환상을 자극한다.
『루이 비통 트래블 북』 〈뉴욕〉 편은 일러스트레이터 장-필립 델롬므Jean-Philippe Delhomme 특유의 재치 있는 통찰력으로 뉴욕의 모습을 쾌활하게 담아낸다. 뼛속까지 파리지앵인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현대 문화의 핵심과 그 속에 즐비한 많은 아이러니를 포착해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국적과 특색을 가진 인물들, 그들의 다채로운 의상과 섬세한 포즈, 소품 등은 지금 이 순간 뉴욕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의 거대한 창을 통해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센트럴파크의 여유로운 풍경, 밤 늦도록 잠들지 않는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조명 등으로 가득한 그림 속 뉴욕은 무척 눈부시다. 하지만 내내 지속되는 듯한 그 눈부심은 어쩐지 현실 세계의 도시를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비트는 것 같기도 하다.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동명의 소설을 포함해 총 네편의 글이 실린 연작소설이다. 각 소설 속 연령대와 직업이 다른 네 명의 주인공은 저마다의 기대와 욕망을 가지고 뉴욕으로 향한다.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며 살아왔던 ‘승아’는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서 친구 ‘민영’이 있는 뉴욕으로 충동적인 현실 탈출을 감행하고, 「장미의 이름 장미」의 주인공 ‘수진’은 이혼 후 홀로 뉴욕에 와 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한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속 ‘현주’는 이번이 네 번째 뉴욕 방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던 ‘로언’과 전처럼 다정한 시간을 보내리라 기대한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나’는 오십대의 소설가로 문학 행사의 초청을 받아 뉴욕에 오게 되는데, 그다지 살가운 사이가 아닌 팔십대의 어머니와 뜻밖의 동행을 하게 된다.
소설은 가상의 이야기지만 주인공들은 마치 실제로 뉴욕을 살아가는 인물들처럼 도시의 민낯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각자의 경험은 그들의 예상이나 기대를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배신한다. 이를테면 낯선 공간에서의 자유와 설렘을 기대했던 승아는 상상 속 뉴욕과는 딴판인 동네와 남루한 민영의 집, 게다가 본인을 위해 애써 청소하고 주스를 만들어 주는데도 냉랭하기만 한 민영을 마주한다. 어학원에 다니는 수진은 성별도 국적도 나이도 다른 ‘마마두’와의 대화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그와 가까워지지만 그들의 첫 나들이는 삐걱거린다. 현주는 자신이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민하게 구는 로언이 낯설고, 소설가 ‘나’는 막상 뉴욕에 도착하자 능숙하게 행동하는 어머니를 보며 의아해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급기야 자기 자신을 대신해 이 도시를 미워하기로 마음먹는다. 세상의 모든 빛들이 섞여 반짝이며 모두가 갈망하던 뉴욕은 그렇게 원망스러운 도시가 되어버린다.
뉴욕은 그 이름만으로도 장밋빛 환상을 부풀리지만, 소설을 통해 작가는 관성적인 판단을 멈추고 예민한 관찰력으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복잡함을 살피기를 권한다. 이들이 겪는 균열과 상처가 장밋빛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지시키면서. 낯선곳에서의 충돌을 통해 끝끝내 자기 자신에게 렌즈를 맞추는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은 관성적인 흥분을 걷어낸 채, 차분하고 정직하게 뉴욕을 응시할 수 있게 된다.
뉴욕으로 향하려는 여행자에게 은희경의 소설과 델롬므의 그림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뉴욕이 정말 그곳에 존재할까? 만약 생각과 다른 그곳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여행은 어떻게 끝날까? 뉴욕이 근사하고 매력적인 도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하지만 단지 ‘뉴욕이니까!’라는 이유가 여행의 전부라면, 그 기대는 철저히 어긋날지도 모른다. 진정한 뉴욕의 찬란함을 느끼고 싶다면, 환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곳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정직하고 성실한 이해가 있을 때 그 관계 맺기의 순간들은 충만하게 빛날 수 있을테다.
July22_NewYork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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