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7

문장 꺼내먹기

Editor. 김선주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김언 지음
서랍의날씨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말이 입에서 맴돌다가 나오거나 사라진다. 언어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세계와 맞먹는 크기와 깊이를 가진 것이기도 해서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내놓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게 가슴 속에 떠다니는 말들을 툭 꺼내놓은 김언 시인의 책이 나왔다.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는 가로 11.3cm, 세로 18.8cm로 작고 가벼운 데다 글자 수가 많지 않아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볼 수 있다. 한 페이지는 단어 하나와 그 단어에서 파생된 한두 줄의 짧은 문장으로 채워진다.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도 충분히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을 만하다. 시인은 익숙한 단어들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하나의 단어에서 떠오른 시인의 단상은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해 종이의 여백을 꽉 채우기 충분하다.얼핏 단어를 자기만의 정의로 재해석한 사전 형식의 책과도 닮아있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인기를 끌었던 새로운 형식의 시와도 닮은 듯하다. 그러나 분명 사전은 아니고, 시인 스스로는 시가 아니라 ‘한 줄 일기’라고 하니, 이것이 시인지 산문인지 혼잣말인지는 독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기껏해야 한 줄. 그걸 들려주려고 너무 먼 길을 둘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어에서 파생한 시인의 짧은 문장들을 보면서 문득, 하나의 말을 하기까지 너무 많은 언어가 소모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세계는 너무 좁아서 불필요한 말을 꺼낼수록 금세 바닥이 나버리고 만다. 그래서 한 문장이면 충분할 말에 앞뒤로 쓸만해 보이는 말을 붙여가며 힘들게 포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고 자세한 설명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가장 중요한 한두 줄의 짧은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