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무지출 소비자가 온다

에디터 : 전지윤, 김수미, 서박하

소비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이자 동력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여러 차례의 경제 위축과 다사다난한 지구적 위기가 잇따르면서, 소비하지 않으려는 소비자들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다. 단순히 ‘무지출 챌린지’나 ‘짠테크’의 유행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팬데믹과, 경제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겪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소비 욕망에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왜 소비에 회의적인 소비자들이 생겨난 걸까? 그 구체적인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소비하지 않는 시대는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1-소비 권하는 사회
우리는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지친 걸음으로 침대에 갈 때까지, 어떻게 보여야 하고, 무엇을 입고 먹고 사야 하는지, 또 얼마를 벌어야 하고, 누구를 사랑해야 하며,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무수한 메시지들에 짓눌려 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투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해야 하는 역할의 무게까지 더해져 많은 이들이 주눅 들고, 불안해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결국 지쳐버린다. (…) 소셜미디어는 우리를 비교중독자이자 평가광으로 만들었다. _베스 켐프턴, 『매일매일, 와비사비』 중
영화감독 페트리 루카이넨은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 스터프〉를 찍으며 1년 동안 물건을 사지 않고 생활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는 새 물건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며 오히려 물건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해방되어 행복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 대부분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사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걸까? 굳이 더 갖지 않아도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루카이넨이 “현대에서 소비는 일종의 중독이자 병”이라 한 것처럼 소비중독에라도 걸리고 만 걸까?
물질 중독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그건 불안과 외로움, 미약한 자존의식 등의 특성이 뒤섞여 끓는 솥이다. (…)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게 보이지 않으려고 물건을 산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나 자신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거예요. 새 물건을 사고 나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는 것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더 쉽거든요.” 다시 한번 좋게 느끼기 위해 다음에는 더 많은 물건을 사야 한다. 중독성 물질 혹은 활동은 일상의 정서적 불안을 제거하지만 동시에 터질 듯이 부푼 갈망을 풀어놓는다. _데이비드 왠 외 2명, 『소비중독 바이러스 어플루엔자』 중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소비주의 사회 체제와 가치 구조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행복’을 긴장이나 스트레스의 해소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 반(半) 무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있다고 말한다.행복이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에 불과한 것인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 행위를 통한 찰나의 만족감을 행복으로 오인하여 남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인의 삶에서 소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필요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행복과 같은 매우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가치들의 내용까지 규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먹고 싶을때 먹고, 필요한 것은 총알처럼 새벽에 배송되는 마법 같은 시 대를 사는 우리는 소비의 풍부함만큼이나 충분한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있을까?
『착한 소비는 없다』의 저자 최원형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오히려 내면의 균형을 잃기 쉽다면서 “물질의 가치가 삶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 버린 사회는 점점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도록 부채질한다”고 설명한다. 매일 새롭게 개발되고 생산되는 상품들의 리듬에 따라 인간 역시 더욱 사물 의존적이고 기능적인 존재로 전락한다는 뜻인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세태가 개인의 문제로만 귀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대 소비사회를 두고 ‘공급이 수요를 완전히 앞질러 버린 시대’라고 정의하면서 인간의 쉼 없는 욕망이 공동의 집인 지구 환경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까지 착취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갖고 더 화려하게 살면서도 더 값싼 팜유와 고기,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물건을 갈망하는 현대인은 숲을 불태우고 자연을 훼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소비는, 지구 환경을 회복 불가능할 지경으로 망가뜨리는 가장 커다란 원인인 것이다. 그 끝에 과연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을까?
현대의 과도한 소비의 원인을 단지 통제력을 잃은 개개인의 탐욕과 낭비, 사치 때문이라고만 저격하기에는 그 이면에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의 이유가 있다. 저스틴 루이스는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에서 1950년대 많은 백인 미국인들이 그 어느 곳,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풍요를 즐기며 멋지고 충만한 삶을 이뤄 줄 것들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사회를 실현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성장 위주의 경제 체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달리말하면, 더 좋은 물건에 대한 욕구와 소비를 부추기는 경제 모델이 ‘좋은 삶’에 대한 소비자의 고유한 관심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상품 구매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 인하도록 권유받고, 거의 모든 물건은 기업의 계획적 노후화라는 순환구조 아래 제 기능을 다해보지 못하고 버려지도록 설계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충분히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더 새롭거나 더 개선된, 상품을 원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우리 삶에서 사라진 것들은 무엇일까? 지금의 우리는 자유로운 시간, 더 나은 개인 관계, 더 느린 삶과 같은 비 감각적 재화와 그것이 안겨주는 행복에 적지 않은 관심을 표출한다. 하지만이 같은 흐름이 주류의 의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녹스칼리지의 교수 팀 캐서가 쓴 책 『물질주의의 크나큰 대가』에 따르면, 1957년 당시 미국인의 약 35퍼센트가 “매우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때 이후로, 특히 과거 어느 때보다 돈을 많이 벌고 가정에 넘쳐나는 물적 재화를 갖추게 된 이후로 미국인은 한 번도 저 정도 수치를 기록한 적이 없다. 풍부한 물질적 부를 누리는 사람들조차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다. (…) 유럽 대다수 국가와 라틴아메리카 전역은 물론 코스타리카, 몰타,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도 미국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미국이 이처럼 낮은 수치를 기록한 이유는 행복의 척도로 물질적부만 강조하는 풍조가 너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_태미 스트로벨, 『행복의 가격』 중
2-소비를 멈춘 세상은 정말 괜찮을까?
지구상의 모든 인구가 미국인의 평균 소비량 수준으로 살려면 지구 다섯 개만큼의 자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나친 소비가 너무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고갈시켰고, 생태와 기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소비가 문제다’라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는 요즘이다. 하지만 소비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 연료가 아니던가?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소비가 조금만 멈칫해도 기업과 산업의 침체, 경제의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누이 가르쳐왔다. 이제 막 잔뜩 위축됐던 소비심리를 깨우려는 노력이 이어지려는 참인데, 소비가 문제라니? 그렇다면 소비가 축소되거나 멈추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저널리스트 J. B. 매키넌은 『디컨슈머』에서 소비를 멈춘 세상에 대한 사고실험을 펼친다. 우선, 캐나다를 대상으로 경제 성장과 인구 성장이 돌연 멈추는 상황을 가정하자 GDP는 가파르게 하락하고, 실업률이 치솟았으며, 정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빈곤이 급증하는 상황이 예측됐다. 성장이 아니라 쇼핑이 중단되는 시나리오는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려했던대로다. 하지만 매키넌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미래의 윤곽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간다.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줄이는 건 어떨까? 소비량의 4퍼센트를 줄이는 그의 ‘느린 소비 시나리오’는 제법 의미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먼저, 소비가 줄면 상품과 서비스 수요도 줄어 경제활동이 축소된다. 덜 벌고, 덜 쓰는 삶은 지금보다 다소 각박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비로 쟁취하려던 지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를테면 부를 과시하는 소비가 바람직하지 못하게 여겨지면서, 오늘날처럼 주변이나 SNS에서 수시로 맞닥뜨렸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계기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취업의 기회가 희박해진 상황은 오히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줄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식으로 물질주의로부터 탈피하게 되면 타인을 의식해 본인에게 필요 없는 물질에 돈을 쓰면서 외재적 가치에 치중하던 삶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위안과 만족, 행복을 제공받을 수 있는 내재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소비하지 않으려는 소비자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판매해야 할까?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자원은 무한하지 않으며 과도한 소비가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상황에서 지금처럼 다수를 대상으로 결핍이나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와 마케팅은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매키넌은 기업들이 자사 상품에 대한 고객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디마케팅 Demarketing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러한 마케팅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재킷 위에 해당 제품이 일으키는 환경 피해를 상세히 적으며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고객에게 내민 파타고니아가 대표적이다. 이 광고는 오히려 파타고니아의 매출을 늘렸고, 파타고니아의 매장 수와 인지도 역시 꾸준히 늘었다. 판매를 위해 반소비주의가 파고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이 위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매키넌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파타고니아와 같은 브랜드는 자신이나 세상의 소비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디컨슈머 시장을 타겟으로 삼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 한 번 구매한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만들고, 오래가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추구하며, 수선, 리셀, 재활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는 기존 산업의 작동 방식과 정반대다.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이 2년만 지나면 기가 막히게 버벅대고, 두세 번 입은 옷은 다시 입기 싫어지는 등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는 현상에 대해 많은 학자는 고객들의 변심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계획적 진부화’가 존재함을 인정해왔다. 고객 의 싫증을 계획함으로써 계속 소비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반면 디컨슈머 시장이 확대된다면 소비재의 품질은 높아지게 된다. 상품이 ‘제대로’ 제작되면서 가격은 훨씬 오르겠지만, 이것이 전체 판매량 하락으로 줄어드는 소득의 일부를 보전할 수 있다. 상품을 유지·보수하는 서비스나 임대·공유, 되팔기 등은 디컨슈머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디컨슈머의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광고도 줄어든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는 광고의 영향력이 깊숙이 스며있다. 비단 이것저것을 사라고 종용하는 직접적인 광고뿐만 아니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부터 드라마나 영화, 뉴스까지 각종미디어와 제작자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소비하지 않는다면 광고의 권력 또한 누그러진다. 다만, 광고의 축소로 우리가 잃게 될 정보와 오락,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나 비영리단체에 직접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 필요해질 것이다.
3-소비단식, 그 뜻밖의 여정
어느 추운 겨울날, 아이와 함께 거실에서 간식을 먹다가 문자를 받았다. “고객님의 카드 한도가 90%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500만 원 한도에 거의 육박하는 카드값 명세서를 받고서는 사용 내역을 확인하려다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할부만 믿고 나에게 주는 선물을 너무 많이 산 것일까? 백화점 지하부터 1층까지 오르내리며 신나게 손에 걸던 쇼핑백들이 떠올랐다.
육아와 일, 그리고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며 탈이 난 나는 꽤 오래전부터 우울·불안장애 진단을 받아 약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우울한 날이면 더 열정적으로 쇼핑을 한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드값이 500만원이라니!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지라 월 500만원은 커녕 연 5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처지에 감당 못 할 카드값이었다. 비대해진 나의 소비 생활을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다급해진 마음에 일단 재테크 책들을 뒤적였다. 그러다 소비단식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소비단식이란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 이외에는 사지 않음으로 써 잘못된 소비습관을 바로잡는, 말 그대로 소비를 중단하는 방식이었다. 다이어트 할 때 단식을 통해 습관을 바로잡기도 하듯이 나에게도 극약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그렇게 일 년간 소비단식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원칙은 단순했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을 가려내고 그 외에는 소비하지 않는 것. 소비단식을 시작하고나자 바로 나의 생활 습관이 가진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불편함을 돈으로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길을 걷다 목마르면 아무 생각 없이 편의점에서 물을 사 먹었고, 입술이 마르면 집에 립밤이 있어도 뷰티 스토어에 들어가 립밤을 샀다. 그러던 내가 당장 삼시세끼 먹는 밥 이외에 돈을 쓰지 않으려해보니 온갖 활동에서 불편함이 느껴지 는 동시에 엉망인 습관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내 생활이 완전히 달라져야 했던 것이다.
물병에 물을 담아 다니기 시작했다. 코트 속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립밤을 모았다. 방을 정리해서 몇 년은 사지 않아도 될 만큼의 펜과 노트를 찾았다. 미세하게 다르다며 구입한 여러 벌의 줄무늬 티셔츠와 비슷한 모양의 청바지들을 옷걸이에 걸었다. 냉장고를 정리해서 먹다 만 크림치즈와 냉동실 한가득 얼려져 있는 빵들을 식재료 목록에 적었다. 서점에서 습관처럼 책을 사기 전에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가능하면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을 찾았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결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터치 한 번에 결제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각종 쇼핑앱에서 자동결제 카드를 삭제하고, 체크카드에 일정 금액을 넣어두고 쓰기로 했다. 처음에는 체크카드 한도 내에서만 지출한다는 것이 너무도 답답했다. 필수품을 살 때도 체크카드 잔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뜨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이런 과정들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다이어트로 무리하면 요요가 찾아오듯이 소비단식 3개월 만에 다시 카드를 긁어대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소비단식을 시작했다. 대신 무작정 쓰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나는 왜 이 물건을 사고 싶은지, 이러한 소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깊이 고민하 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깨달았다. 이전에 무분별하게 무언가를 사던 나는 현재를 살지 않았다는 걸. 좋은 집과 좋은차, 명품 옷과 가방을 가진 주변 친구들이 늘 부러웠고, 그들처럼 샤넬백을 가질 수 없다면 그들이 사는 고급 버터라도 사야 했다. 평범한 노트면 충분히 잘 쓸 수 있는데도, 10배 정도 가격의 노트를 사용했다. 친구들과 만날 땐 괜스레 고급 레스토랑을 제안하고는 했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아닌, 부유해 보이는 나를 보여주기 위해 소비 를 했었다. 소비단식 과정에서 이러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많이 울기도 했다. 왜 소비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했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이미 많다. 반소비주의 Anti-consumerism는 오늘날과 같은 소비사회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운동으로, 특히 광고가 소비주의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나 또한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SNS에서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가 어떤 선크림을 바르며 좋다고 이야기하면 ‘그래, 선크림은 필수품이니까’라며 구매했다. 그 선크림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그 선크림을 쓰면 내 피부도 매끈해질 거라 생각하며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내겐 당분간 새로 살 일이 없는 물건들이 이미 많이 있었다. 현재 가진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감사하는 것, 소비단식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중요한 가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 예전 같으면 맘에 드는 옷이 없다면서 하나 새로 샀을 법하지만,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좋아하는 옷을 챙겨 입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내내 걱정했다. 역시 티셔츠라도 새로 살 걸 그랬나,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반가워하는 친구들을 보자 그런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 걱정은 사라지고 만남의 즐거움을 누렸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옷에만 신경 쓰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겉보기에 소비단식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비슷한 옷을 입고, 늘 들던 가방을 들고, 거기에 물병과 약간의 간식, 그리고 오래된 노트와 펜을 챙겨 다니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되기까지 거 쳐왔던 고민과 노력은 제법 치열했다.
이 소비단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누군가 만들어준 필요가 아닌 진짜 필요를 찾아내는 건강한 내가 되었으면 한다. 보여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회를 씩씩하게 거스르면서 충만한 내가 되는 방법을 소비 생활의 변화가 일깨워주고 있다.
April23_Topic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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