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october, 2018

묘생과 인생의 조합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고양이와 할아버지』 1~4네코마키
미우

워낙 개파라 사실 고양이에 관해 잘 모른다. 아는 게 있다면 ‘귀엽다는 것(?)’뿐. 함께하는 게 어색하지만 함께하기에 그 매력이 배가 되는 캐릭터를 찾아 짝을 이룬 캐릭터 커플이 많다. 그간 고양이와 짝꿍을 이뤘던 캐릭터는 영리한 쥐,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강아지 정도였다. 그렇다면 쥐, 강아지 말고도 또 있을까?
『고양이와 할아버지』의 저자 네코마키는 고양이와 잘 어울리는 조합으로 할아버지를 선택했다. 어딘가 까칠할 것 같은 일본 할아버지가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나이 지긋한 고양이 타마와 함께한 사계절을 그린 만화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보여주는 독특하고 다정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연체동물 같은 유연함은 물론 우아한 몸짓을 자랑하는 고양이, 이 요망한 생명체와 ‘츤데레’ 할아버지 조합은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
(바닥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다이키치 할아버지의 이마에 타마가 솜방망이를 턱 올렸다.)
“타마, 내가 몇 번을 말하니. 내 이마에 있는 검은 건 점이라니까.”

사실 만화책은 한번 읽으면 다시 펴보는 일이 없어 사서 보기보다는 만화방에서 빌려보는 편이지만, 적어도 이 만화책만큼은 소장하고 싶은 욕구에 휘둘려 전권을 구매했다. 큰 지출이긴 했으나 두고두고 보는 맛이 참 좋다. 이 책은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고양이 타마와 둘이서 사는 다이키치 할아버지의 한 해를 그린 만화다. 한 권에 사계절, 총 4년간의 이야기가 담겼다. 한 해에 수백 종 이상의 고양이 관련 서적이 출간되는 일본에서 이 만화책은 ‘제19회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 심사위원회 추천작으로 선정됐다. 고양이 수십 마리가 모여 사는 한적한 어촌을 수묵담채화 같은 그림체로 묘사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따뜻한 분위기가 잘 살았다. 특히 권마다 영화 배경 스케치를 보는 마냥 어촌을 훑어주는 연출 또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본 특유의 담벼락이 낮은 전원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고양이들은 그 담벼락을 한가로이 거닐고 제집이 아닌데도 거리낌 없이 주택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 누구도 길거리에 발라당 나부라져 있는 고양이들에게 한 마디 핀잔 주지 않고, 갓 잡은 생선을 무심하게 한 마리 통째로 척척 내주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정겹다. 작가는 고양이신을 모시는 마을 노인들과 고양이들의 사계절을 큰 사건 없이 담백하게 훑으면서 인생의 끄트머리에 도달한 노인들이 느끼는 삶의 애환이나 슬픔을 고스란히 녹였다. 특히 어느 틈엔가 노인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다독여주는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 그림책의 묘미는 ‘숨은 고양이 찾기’다. 작가가 여기저기 숨겨둬 (사실은 대놓고 그렸지만)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라서 책을 볼 때마다 새로운 고양이를 발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1권 특별 부록에 담긴 초기 설정 자료집을 보면 ‘밖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집에 함께 돌아갑니다’라고 적혀있다. 다이키치 할아버지와 타마가 밖에서 우연히 마주쳐 집에 돌아가는 모습의 설명 문구인데, 고양이인 타마가 사람의 수를 세는 단위로 표기되어 있다. 편집자의 실수겠지만 만화 속에서 사람처럼 행동하는 타마니까, 이 부분은 귀엽게 넘어가기로.
책 속에 빠져있을 때는 몰랐는데, 현실을 깨닫고 뒷맛이 씁쓸하다. 기분 탓이겠거니 했지만, 결국 국내 길고양이들의 비참한 생태에 관한 소식이나 인간이 저지른 만행으로 생을 끝내야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복잡한 심경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도 『고양이와 할아버지』의 배경처럼 고양이와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이 널리 널리 읽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