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6

몸을 봄

Editor. 이수언

춤이 좋아 몇 달씩 개인 지도를 받았으나 재능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깔끔히 접었다.
하지만 아직도 홀로 무아지경 춤사위를 즐긴다.
최근 ‘쇼미더머니 5’를 시청하며 사이퍼 연습에 돌입했다.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문학과지성사

4년 전 가을, 천장부터 연결된 검은 천을 얼굴까지 가린 어느 무용가의 퍼포먼스를 보고 경이로움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도 저런 몸짓 하나쯤 탑재하고 싶다는 생각에 ‘몸’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련되지 않은 몸과 친해지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유연성 따위 없는 몸뚱어리는 각목처럼 뻣뻣했으며, 그 나무막대기를 조금이라도 더 구부리기 위해 매번 다리, 허벅지, 옆구리를 찢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몸과 마음의 주파수가 달라 몸이 앞서 조급하게 움직이는 것도 다반사였다. 춤 선생은 “너의 조급한 마음이 다 보인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급해하지 않으려 더 성급히 움직였다. 몸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은 삐걱거리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내 몸뚱어리로는 글렀다’라는 판단이 들었고 가까스로 알게 된 육체에 대한 작은 지식은 그렇게 희미해졌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다시 방치된 몸을 보며 노력한 시간이 아까웠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몸의 일기』는 그런 나에게 아련한 부끄러움을 상기시켰다.
“이젠 절대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_12세 11개월 18일”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 숲에 혼자 버려져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 후부터 주인공은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해, 거울 속 비친 타인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본격적으로 몸에 관해 적는다. 이후 주인공이 쓴 1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대한 글은 사랑하는 딸에게 남겨진다.
주인공은 2차 성징에 얽힌 경험, 어린 시절 친구와 하던 기절 놀이, 가상의 친구 도도에게 귀두를 까는 방법을 전수하고 하품의 전염성에 대해 실험을 한다. 또 흠잡을 데 없는 똥을 관찰하거나 새로 생긴 점과 점 사이를 그어보며 피부가 늙어감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게 된 것과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 등에 대한 아쉬움을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몸의 신호를 이해하고자 한 주인공의 근면한 열정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무려 열세 살 때 “무엇인가를 기록하기 전에 꼭 마음을 진정시킬 것”이라며 마음과 육체를 분리할 줄 알았던 화자는 아직도 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평생 몸을 기록한 화자도 몸의 티끌만 한 변화나 앞날을 예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발가락에 티눈이 생기거나 과로로 인한 출혈로 열흘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얼마 안 되어 다시 접촉성 피부염이라는 병에 걸린다. 하지만 그 모든 증세를 적기만 할 뿐 ‘왜 예상하지 못했냐’는 원망 섞인 감정적 참견은 찾아볼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짧아지는 보폭, 몸을 일으킬 때마다 찾아오는 현기증, 굳어버린 무릎, 터지는 정맥, 쉰 목소리, 허는 입술, 자꾸만 잊고 잠그질 않는 바지 앞 지퍼에 대해서도 그저 기록할 뿐이다. 그 모습에 다시 익숙해진 몸은 이내 곧 마음을 평정한다.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 없다. _86세 2개월 28일”
자신이 몸의 주인이라 여기지 않고 동거인으로서 몸과 같이 지낸 주인공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동거인. 그것참 좋고 불편한 존재다. 따로, 또 같이 정답게 지내온 세월을 보내고 그들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무엇을 꼭 남겨야 된다는 생각이 우습다. 나는 단 한 톨도 남길 것이 없을 텐데. 그저 이 한평생을 즐거이 보낸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까울수록 관계에 소홀해진다지만 한평생 우리는 몸에 너무 소홀하다. 우리 몸은 매일 놀랄 거리를 제공하는데 말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목과 어깨가 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