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모를 수 없는 이야기,
소설가 최진영

에디터: 김선주
사진: 김정원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라는 문장으로 제야의 일기는 시작된다. 비 내리는 월요일 저녁, 18살 소녀 제야는 동생 제니, 사촌 동생 승호와 자주 가던 아지트에서 당숙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날 이후 제야의 시간은 멈춰버린다. 혼란스럽고 화가 나고 당혹스러운 시간들 끝에 제야는 멈춰 있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당숙을, 그의 편을 드는 사회를, 가족들을,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런 제야를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등 속도감 있는 전개를 통해 사랑과 인간에 대해 그려왔던 최진영 작가가 내놓은 『이제야 언니에게』는 우리 주변에서 홀로 애쓰고 있을 수많은 제야를 소설의 자리로 초대한다. 그리고 모를 수도, 끝낼 수도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야 언니에게』는 원래 ‘문학3’ 온라인 지면으로 먼저 연재됐던 소설이에요. 성폭행 피해자의 이야기라는 다소 쉽지 않은 내용인데, 쓰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젊은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여러 일들을 겪었고 그렇기 때문에 제야의 심리를 저도 늘 가지고 있었기에 소설이 되어 나온 것 같아요. 계속 품어왔던 감정이라 언젠가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다루기 힘든 이야기이다 보니 선뜻 손대지는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사회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 이제는 써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조금씩 하게 된 거죠.

연재 당시 제목은 원래 ‘이제야 누나에게’였는데 책으로 출간되면서 ‘누나’가 ‘언니’로 바뀌었어요. 그래서인지 여성들의 연대 의식이 좀 더 뚜렷해진 느낌인데, 이렇게 바꾸신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그냥 ‘이제야’였어요. 온전히 ‘이제야’라는 인물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편집부에서 좀 더 독자에게 다가가기 쉬운 제목으로 고민해주셔서 지금의 제목이 됐는데,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좋아요. 연대를 말씀하셨는데 아직까지 제야의 입장에서 연대는 너무 먼 이야기일 것 같아요. 누구보다 가까운 제니나 승호, 이모도 있지만 제야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아직 힘든 상황이거든요. 결국에는 책을 읽고 제야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느낌 자체가 연대가 아닐까 싶어요.

읽기도 힘든 만큼 쓰기도 힘든 소설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성폭력 피해자의 언어를 소설로 옮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런 글을 쓰는 게 힘들었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비슷한 피해를 겪은 분이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이걸 옮겨적는 일이 괴로웠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대신 두려운 마음이었죠. 너무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도 됐어요. 당연히 섣불리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게 쓸 수도 없었어요. 해피엔딩이 되어버리면 더 박탈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요. 이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얼마큼 어디까지 이 현실을 써야 하는지 그 지점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책을 읽기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는 마음도 공감해요.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현실과 다르게 그려버린다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쓸 수 있는 만큼 쓰자는 마음으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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