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Report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의 일년』형형색색의 블랙코미디

에디터. 지은경 / 그림. 마르셀 드자마 / 자료제공.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 Marcel Dzama

낙타와 야자수, 광활한 사하라 사막 가운데 낙원의 모습을 한 오아시스, 청량한 파란색 대문과 회반죽으로 다듬은 새하얀 벽들, 담 넘어까지 가득 피어나는 붉은 오렌지빛의 꽃들, 낮잠 자는 고양이, 오색찬란한 고급 공예품과 보석을 파는 시장과 신비로운 공기… 모로코는 ‘이국적 풍경’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마라케시행 비행기에 오르는 여행자들은 이국에서는 어쩐지 이루어질 것만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 이내 비행기 창밖으로 유럽 대륙의 끝인 이베리아반도가 멀어져 가고, 한동안 이어지는 깊은 빛깔의 바다를 지나면 아프리카 대륙이 남쪽에서 손짓을 한다. 드디어 모로코에 도착! 바로 여기서부터 환상은 끝나고, 기대치 않았던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썰렁한 공항을 지나, 흔들리는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시장 어딘가에서 끝없이 피어오르는 연기와 요상한 물건들이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뭔가 다른 속셈이 있어 보이는 낯선 시선에, 골목마다 코를 찌르는 하수구의 악취까지.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베일에 둘러싸였던 환상은 산산이 부서져버린다. 동경하던 장소에 실제로 찾아가 거주하는 일은 꽤나 가슴 설레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지의 관습과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그 마음 역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타히르 샤Tahir Shah의 『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은 정신없이 지내지 않으면 나무늘보 취급을 당하기 일쑤인 런던에 거주하던 작가가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의 이국적인 추억과 여유로운 생활을 찾아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이주하는 내용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미리 매입한 대저택, ‘칼리프의 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다르 칼리파’에 도착한 일가족. 비밀이 드러나듯 천천히 문이 열리자, 이들이 꿈꾸던 판타지를 현실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야자나무와 무궁화가 가득한 정원, 풀밭 안에는 분수대가 있고 부겐빌레아, 선인장 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과 오렌지 수풀까지. 손에 입을 맞추는 관리인을 따라 집 안으로 발을 내딛자 신비롭게 펼쳐지는 방들의 미로, 시더나무로 만든 고풍스러운 모로코식 아치형 문들과 유리조각들로 반짝이는 팔각 창문들은 분명 새로운 주인을 환영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골칫거리는 첫날부터 시작된다. 방마다 진(귀신)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야 하고, 화장실조차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당황하는 그에게 관리인은 이렇게 말한다, “웃지도 말하지도 말고 돌아다니지 말며 불경한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진들을 화나게 하거든요.”
타히르와 그의 가족은 집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기대와 어긋나는 수많은 문제들, 특히 미신과 거짓말, 나태함, 그리고 일부 현지인들의 부조리함을 맞닥뜨린다. 타히르는 오랫동안 집을 관리해온 세 명의 관리인, 수리공들,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비서,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모로코의 현실을 알게 되고, 점점 지쳐간다. 가구와 목재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이고, 석공들은 환상적인 솜씨로 일을 시작하지만 야무지게 끝맺지를 않으며, 관리인들은 모든 문제와 불행을 귀신의 탓으로 돌린다. 그가 보기에 모로코는, 영국에서 가장 어렵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간단하게 처리되어야 할일들이 되레 아주 오랜 시일을 끌며 결국 미궁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곳이다.
주인공에게 처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이국적인 자연과 풍경, 그리고 현지 생활의 깊숙한 모습이 세세하게 묘사된다. 모로코의 전통 의상인 젤라바Djellabah를 입은 우울한 얼굴의 남자들과 싸구려 담배연기가 가득한 카페에서 마시던 카페 느와르, 판자촌에서 들려오는 양 잡는 소리, 집에 진이 들었으니 퇴마의식을 거행해야 한다는 사람들, 섬세한 장인의 손길이 가득한 모로코식 모자이크 타일과 시더나무의 향… 거기에는 아랍 세계의 사고방식과 생활 양식, 이해할 수 없는 일상의 공식들, 아침을 채우는 특유의 공기, 화려한 색감, 부와 빈곤이 한데 뒤얽힌 오묘한 분위기가 묻어 있다. 이 모든 수수께끼 같은 풍경은 타히르의 비서 카말의 한 마디로 요약된다. 타히르가 그에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서구식의 이성적 사고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자 카말은 이렇게 말한다.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여긴 모로코입니다.”
블랙코미디를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투성이의 현실에서 웃을 거리를 찾는 일이 가당키는 한가’라는 의구심도 들고, 종종 분노까지 치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비롭고 이국적이라 여기며 동경하는 나라들에서는 종종 현지인들과 여행자 사이의 이해 부족으로 인한 블랙코미디가 펼쳐지곤 한다. 사고방식이 너무도 다른 나머지, 상대에 대한 무지가 일종의 두려움이나 신비감을 자아내고, 결국은 우습지만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동경의 마음을 가지고 떠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는 블랙코미디의 맛은 제법 쓰고 맵다. 이성적 사고가 지배적인 사회에 익숙한 우리는 합리적이지 않은 일들을 그저 그른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적어도 여행지에서는 그런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 이국의 매력적인 정취는 우리 눈에 어이없을 수도 있는 그들만의 솔직함, 삶과 운명에 대한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 모로코에서는 지금껏 믿었던 모든 종류의 삶의 방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때 비로소 모로코가 가진 아름다움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July22_Morocco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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