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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7

모든 선량한 고양이들이 가는 곳

Editor. 한진우(메디치미디어 편집자)

새해 들어 금연을 결심했지만 16시간 만에 “마약 중독자를 얕보지 마!”라고 외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연의 대가로 구입했던 플스VR을 아내가 팔아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캣센스』 존 브래드쇼 지음
글항아리

그 고양이는 눈 오는 날 우리 마을에 왔다. 고양이는커녕 개도 보기 힘들었던 15년 전 우리 시골 마을에 언감생심 고양이라니. 어른들은 밥 달라고 문 앞에서 야옹 하고 우는 고양이를 쫓아내기 바빴다. 몇 번인가 발길질을 당하고 또 몇 번인가 물세례를 맞은 그 삼색 고양이는 꿋꿋하게 대문 앞에서 울었다. 알고 보니 고양이는 배가 불러 있었다. 마을 교회에서 성탄절 노래가 울려 퍼지던 날, 고양이는 옆집 보일러실에서 새끼들을 낳았다. 어른들은 어미 고양이에게 ‘복길이’라는 구수한 이름을 붙여주고 비로소 밥을 주기 시작했다.
복길이는 새끼고양이 다섯 마리를 낳았는데 옆 마을 사람들이 네 마리를 데려가고 유난히 몸이 약한 노란색 수고양이만 홀로 남았다. 그 새끼 고양이는 태어나자마자 크게 앓았고 결국 사시가 되었다. 그 수고양이는 유난히 “앵앵~” 하고 울었고 동네 누나들은 ‘앵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귀여워했다.
앵앵이는 눈이 가운데 몰린 주제에 쥐들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 왔다. 어느 날 아침에 어머니께서 현관을 나서는데 문 바로 앞에 들쥐 일가족의 주검이 나란히 놓여 있었더란다. 들쥐들 앞에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앵앵 울어대는 앵앵이에게 어머니는 참치 캔을 하나 따주셨다. 반면에 아버지는 텃밭에 물을 주러 나갈 때마다 어느새 다가와 발가락을 깨물고 발등에 발라당 누워서 비벼대는 앵앵이를 탐탁치 않아 하셨다. 한번은 아버지 다리를 타고 올라오다가 발톱이 바지에 끼어서 실밥이 터지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앵앵이는 한동안 아버지를 피해 다녀야 했다. 겨울에 새끼를 낳고 다음 해 여름을 힘겨워하던 어미고양이 복길이는 홀연히 마을에서 자취를 감췄다. 누나는 고양이용 통조림을 대문에 놓고 기다렸지만 억척스럽되 애교 넘치던 삼색 고양이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2월 25일, 마침 앵앵이의 첫 번째 생일이던 날 집고양이를 받았다. 검은색 가르마와 하얀 양말이 매력인 수고양이 ‘나나’였다. 이름이 나나인 이유는 ‘오직 나밖에 몰라서’였다. 나나는 그야말로 완벽한 주인형 고양이로서 우리 일가족은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수발을 들어야 했다. 집고양이와 마당고양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있음에도 나나와 앵앵이의 우정은 각별했다. 옆 마을에서도 고양이가 늘어나고 어쩌다 한 마리가 우리 마을에 어슬렁거리면 앵앵이와 나나가 용맹하게 달려들어 쫓아냈다. 그 광경을 보며 어른들은 집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웃으셨다.
이번 달은 앵앵이의 3주기다. 우리 마을에는 소위 뒷동산이라 불리는 아담한 소나무 숲이 있는데, 어느 초여름 날 앵앵이가 그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힘들게 걸어갔다고 한다. 옥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머니가 “앵앵아! 저녁 먹어!” 하고 외치셨다는데, 우리 마을의 늙은 쥐 사냥꾼은 딱 한 번 돌아보고 “앵앵~” 하고 울고는 숲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앵앵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아내는 무척 슬퍼했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고양이들만의 천국을 ‘모든 선량한 고양이들이 가는 곳’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저번 주, 오랜만에 시골집에 갔는데 마당이 영 허전했고 홀로 남은 나나는 무료해 보였다. 저녁을 먹고 마루에서 때 이른 수박을 먹는데 어머니께서 『캣센스』라는 책을 꺼내오셨다. ‘고양이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망라했다’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했다. 가족들과 책 속 고양이 삽화를 찾아보며 복길이와 앵앵이를 추억하다가 다 같이 크게 웃었다. 앵앵이가 쥐를 잡아와 현관 앞에 늘어놓은 건 책에 따르면 우리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캣센스』 같은 책을 진작 봤다면 마당 고양이로서 우리 집을 지키고, 쥐를 박멸하고, 마을 어귀에서부터 현관까지 나를 졸졸 따라 다니던 앵앵이를 더 깊게 이해하고 더욱 사랑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나도 언젠가는 ‘모든 선량한 고양이들이 가는 곳’으로 떠날 것이다. 그때까지 더욱 사랑해주기 위해 마당에 앉아서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나나를 쓰다듬으며 『캣센스』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