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Report

멕시코, 『뻬드로 빠라모』뜨겁고 황폐한 땅이 품은 비밀

에디터. 서예람 / 그림. 니콜라 드 크레시 / 자료제공.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 Nicolas de Crécy

“죽음은 삶의 공허한 몸짓을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다. 행동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후회하는 것과 시도한 것들이 뒤죽박죽된 혼란으로 얼룩진 우리의 인생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종말, 곧 죽음과 맞닥뜨린다. 죽음은 삶을 규정하며, 삶을 불변의 형태로 각인한다. 우리는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버린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가 멕시코인의 진정한 얼굴과 그 역사적 뿌리를 탐구한 저서 『멕시코의 세 얼굴』에 쓴 말이다. 이 책의 원제는 ‘고독의 미로’다. 그의 말마따나 멕시코인들에게 평생의 화두인 ‘죽음’을 그 문화를 이해하는 시발점으로 삼아보아도 좋겠다. 그 결론이 현대인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고독과 허무일지라도 말이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el Día de los Muertos’ 전통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2017년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를 통해 이를 알게 된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 축제는 현재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치러진다. 기원을 따지면 망자의 날은 약 3천 년 전, 아즈텍 문명에서부터 내려온 명절이다. 그런데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면서 가톨릭교가 유입되어 그들의 절기인 ‘만성절’ 근처로 날짜가 지금처럼 바뀐 것이다. 이 시기에 멕시코인들은 죽은 친구나 가족들의 무덤을 찾아 금잔화 꽃을 바치고, 거리에서 해골 분장을 하고 퍼레이드를 하며, 집에서 ‘망자의 빵’이라는 빵과 해골 모양의 설탕과자를 나눠 먹는다.
단 두 권의 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멕시코 작가 후안 룰포 Juan Rulfo의 소설 『뻬드로 빠라모』는 동명의 인물 뻬드로 빠라모에 관한, 죽음과 삶의 이야기가 뒤섞인 구조 탓에 쉬이 이해하기 힘들다. 화자로 등장하는 후안 쁘레시아도는 타지에서 맞이 한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꾸 귀에 맴도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 나선다. 소설은 뜨거운 8월, 후안이 뻬드로 빠라모가 운영하던 대농장 ‘메디아 루나’가 위치한 마을 ‘꼬말라’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시작한다. 후안은 마부 아분디오를 만나, 그로부터 뻬드로 빠라모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어딘가 기묘한 만남 이후, 후안은 아분디오가 소개시켜준 여인 에두비헤스 디아다의 집에 당도하는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에두비헤스가 후안이 올 거라는 소식을 죽은 그의 모친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마부 아분디오마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놀라운 이야기까지 한다. 잠깐, 에두비헤스 본인은 살아있는 사람이긴 할까? 이곳 꼬말라에 산 사람이 있긴 한 걸까? 후안은 유령의 마을에 들어온 게 아닐까?
소설 전체는 짧은 토막글들이 임의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은 이들의 웅성거리는 혼잣말들은 결국 뻬드로 빠라모라는 사람과 그가 다스리던 대농장 메디아 루나에 있었던 여러 죽음을 가리킨다. 이 이름들에는 미묘한 의미가 담겨 있다. 부친의 이름 뻬드로 빠라모Pedro Páramo에서 ‘뻬드로’는 성서에서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제자 베드로와 같은 이름으로, ‘돌’이라는 뜻을 가지며, 성(姓)인 ‘빠라모’는 스페인어로 황폐한 땅, 즉 황무지를 의미한다. 이들의 터전 ‘꼬말라’는 토르티야를 굽는 진흙으로 만든 화덕 ‘꼬말리comalli’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그만큼 뜨거운 곳이라는 뜻이다. 뜨겁고 척박한 땅을 다스리는 뻬드로 빠라모는 자기 멋대로인 난봉꾼으로 그려진다. 그는 사람을 소유하고 이용할 줄만 알지, 딱히 철학이 있거나 타의 귀감이 되는 선한 영웅이 아니다. 차라리 ‘마초’라고 불릴 만하다. 옥타비오 파스는 『멕시코의 세 얼굴』에서 마초를 ‘무서운 사람’이자 ‘불량배’,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로 정의하는데, 뻬드로 빠라모는 그 모습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다.
마초인 부친을 찾아 꼬말라에 온 후안은 꼬말라에 도착하면서부터 죽은 이들을 보고, 함께 대화한다. 소설 중간에 후안마저 죽는데, 이후로는 그가 묻힌 땅속에서 죽은 이들의 목소리만이 들린다. 이처럼 꼬말라는 죽은 자들의 마을이다. 사후세계로서 꼬말라의 독특한 점은, 죽은 자들이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돌아온 아들, 후안 쁘레시아도와 대화를 하거나 각자 혼잣말을 할뿐,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심지어 그 모든 이야기들의 중심에 있는 뻬드로 빠라모와 그가 인생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 수사나 사이에도 대화가 없다. 죽은 수사나의 혼잣말이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올 뿐이다. 흔히 상상하는 사후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살아있는 지금의 세계처럼 대화가 있는, 일종의 커뮤니티인 죽음 이후를 기대하지만 뜨거운 땅 꼬말라에서 죽은 영혼들은 모두 고독하다.
목소리들을 통해 드러나는 꼬말라의 역사에는 빈 곳이 많다. 죽은 이들이 저지른 죄와 이들이 죽음에 이른 상황, 꼬말라가 위치한 멕시코 중서부 할리스꼬 지방에서 있었던 종교 내전과 멕시코 혁명의 다분히 세속적이고 내밀한 사정이 사진처럼 삽입되어 있다. 다수의 예술적인 만화와 이야기를 그리고 지은 작가 니콜라 드 크레시Nicolas de Crécy가 작업한 『루이 비통 트래블 북』 〈멕시코〉 편에도 알 듯 말 듯한 이야기와 고독이 숨어 있는 듯하다. 작가는 높은 고도 위에 세워진 수도 멕시코시티와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남부의 와하카, 자연 경관이 유명한 북동쪽의 관광도시 쿠엣잘란 등을 여행하며 그 풍광을 그렸다. 그림 속 멕시코에는 뜨거운 푸른빛과 고독한 주황빛이 일렁인다. 이러한 색채는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다. 색들이 혼재된 가운데, 얇고 흔들리는 윤곽선은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모호하게 색을 잃고, 흐리거나 어둠이 내리운 뒤에야 또렷하게 떠오른다. 죽음 뒤에 더욱 또렷해지는 삶의 비밀처럼 말이다.
July22_Mexico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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