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맛도 추억도 곱빼기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초록개구리

짜장면은 전통음식이 아님에도 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간적, 시간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형성된 여러 문화 중 우리 민족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달콤 짭짤한 맛과 배달 음식의 대표 주자라는 정도의 내용은 짜장면이 품고 있는 이야기 중 극히 일부분인 게 아닐까?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라는 노래 가사처럼, 수많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한 짜장면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배달 요리의 시조새
요즈음이야 우리나라만큼 배달 음식이 넘쳐나는 곳이 또 있을까 싶지만, 과거에는 배달 음식이라 해봐야 중화요리가 전부였다. 총알처럼 빨리 음식을 배달하겠다는 포부가 느껴지는 배달원들의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빨간 페인트로 ‘◯◯반점’ ‘◯◯루’‘◯◯각’이라는 식의 이름이 새겨진 철가방이 있었다. 중국집의 배달 속도는 빠르기로 유명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초인종이 울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로 배달원 아저씨가 철가방을 열면 책꽂이처럼 칸이 나누어진 내부가 슬쩍 보였는데, 그 안에는 절묘한 배치로 겹겹이 쌓인 그릇들이 있었다. 재빨리 그릇을 받아 들어 바닥에 내려놓은 뒤 음식값을 건네면 배달원 아저씨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어찌나 빨리 배달됐는지, 그릇은 살짝 손만 대도 아직 뜨거웠다.
“중국 음식점의 3대 요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누구나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거예요. 짜장면, 짬뽕, 탕수육! (…) 짜장면과 짬뽕은 이따금 우리에게 고민을 안겨 주어요. ‘짜장면을 시킬까, 짬뽕을 시킬까?’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짬짜면’이라는 메뉴까지 탄생했을까요? 중국 음식점에 가면 시작되는 그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예요.
아는 맛도 다시 보자
『짜장면 공부책』의 표지는 입맛을 절로 돋운다. 완두콩과 오이채를 살포시 얹은 짜장면이 하얀 반점 무늬가 있는 쑥색 멜라민 그릇에 담겨 있다. 짜장면 뒤로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와 가지런히 썰어놓은 노란 단무지가 보인다. 짜장면 먹을 때 없어선 안 될 짝꿍들이다. 춘장에 푹 찍은 생양파도 마찬가지. 윤기가 좔좔 흐르는 면을 한 젓가락 집은 모습을 보니 그림인 줄 알면서도 입에 침이 고인다. 역시 아는 맛이 더 무섭지! 덕분에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젓가락만 댔다 하면 호로록호로록 넘어가는 짜장면은 정말 맛있어요.(…) 먹어도 먹어도 자꾸자꾸 먹고 싶은 짜장면. 이 짜장면 때문에 엄마, 아빠한테 잔소리 듣는 일이 잦아졌어요. 나는 하루에 한 번 꼭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엄마, 아빠는 절대 안 된다고 하잖아요. 면 음식을 많이 먹는 건 좋지 않대요. 그래서 하루는 아빠한테 또박또박 물었어요.‘아빠, 하루 세끼 밥은 되는데, 면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주인공 준희는 학교 급식으로 나온 짜장면을 맛본 이후 매일 짜장면이 생각날 정도로 짜장면을 좋아하게 된다. 그런 준희를 위해 아빠는 준희, 완이 남매와 함께 부엌으로 향한다. 이왕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면, 정성이 담긴 한 끼 식사를 아이들이 손수 만들어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은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앞치마를 두른 아빠. 그 옆에서 모든 조리 과정을 살펴보는 준희와 완이는 배달 음식으로만 간편하게 즐기던 짜장면의 진 면모를 발견한다. 왜 전문가용 국자와 프라이팬을 쓰는지, 짜장면에 식초를 넣으면 왜 맛이 달라지는지, 우리가 먹는 짜장면과 중국 사람들이 먹는 짜장면이 왜 맛이 다른지 등 짜장면 한그릇에 먹음직스럽게 담긴 지식들을 양껏 알게 된다. 책 속 레시피와 준희가 내보이는 짜장면을 향한 반짝이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또한 자연스럽게 ‘음식’과 ‘공부’를 모두 완성할 수 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다.
짜장면을 읽어볼까?
“짜장면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가 무엇일까요? 바로 짜장면 특유의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을 내는 춘장이에요. 춘장은 고향을 떠나온 중국인이 직접 담가 먹던 톈몐장에서 시작되었어요. 춘장의 고향이 중국이니, 짜장면의 고향도 중국이지요. (…) 1882년에 구식 군대가 신식 군대와의 차별에 불만을 품고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청나라는 조선을 돕는다는 이유로 군대를 보내왔어요. 이때 청나라 군대를 따라 제물포로 들어온 상인 중 부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기름에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했는데, 이 음식이 짜장면의 원조인 ‘자장몐’이에요.”
짜장면 한 그릇을 거뜬히 해치운 아이는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 볼 수 있는지 슬쩍 물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양파껍질만큼은 본인이 까겠다면서. 좌르르 윤기 흐르는 짜장면 소스의 화학 공정에도 흥미를 느끼는 걸 보니 엄마로서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다. 머지않아 우리집 부엌은 까만 소스로 초토화가 되겠지… 분명 우아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짜장면은 유쾌한 기억으로 남을 테다.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짜장면에 대한 추억을 아이에게도 안겨줄 차례인 것 같다.
“식탁과 옷에 얼룩이 남더라도 모든 감각을 활짝 열고 여러분이 음식을 만나는 순간들을 기억해 두세요. 양파의 겉껍질과 알맹이는 질감이 어떻게 다른지, 춘장이 기름 위에서 어떻게 율동하며 풀어지는지, 함께 먹는 가족이 여러분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지. 자세히 보고 기억하는 일상의 순간이 모여 여러분을 자라게 할 거예요. 아무리 평범하고 소박한 음식이라도 말이지요. 이야기가 깃들게 될 밥상을 겪으며, 언젠가 여러분도 어른이 되어 자신의 소울 푸드를 말하게 되겠지요?”
May22_TailofTales_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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