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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Editor. 이희조

닥스훈트 키라의 주말 견주이자 목욕 담당.
참고로 키라는 데스노트에 등장하는 키라(Killer)냐는 오해를 받지만,
일본어로 ‘반짝반짝’이라는 뜻을 가진 ‘키라키라(キラキラ)’에서 따온 이름이다.

『플러쉬』 버지니아 울프 지음
꾸리에

우리 집 강아지 키라를 두고 언젠가 어머니가 진지하게 ‘키라는 언젠가 분명히 말을 할 거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어머니가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셨구나’ 생각했지만 가끔은 나도 키라가 언젠가 사람의 말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아차’ 했던 에피소드는 늘어만 간다.
하루는 산책을 하러 집에서 나왔는데, 키라가 아파트 입구에서 갑자기 멈춰 서더니 버티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줄을 꺼냈을 때 그렇게 눈빛이 반짝반짝하던 아이가 문을 나서자마자 이런 행동을 보이니 나는 너무 황당해서 ‘너 왜 그래’ 하며 목줄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몇 분간 실랑이가 이어진 끝에 지쳐 집에 들여보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 배변의 흔적이 놓여 있었다. 밖에서는 볼일을 보지 않는 키라의 침묵 시위였던 것.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목 아프게 목줄만 당겼잖아.

반대로 키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었던 경우도 있다. 키라가 어릴 때 집 안에 작은 화재가 났다. 할머님이 모르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놓고 외출한 바람에 부엌에 불이 난 것이었다. 이웃의 신고로 소방대원들이 오고 화재는 진압됐지만, 키라가 사라졌다. 소방대원들이 문을 연 그 순간, 집 밖으로 뛰쳐나가 실종된 것이었다. 다행히 오빠가 집 주변을 두 시간 정도 찾아 헤맨 끝에 이웃 사람들과 놀고 있던 키라를 가까스로 발견했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혹시 그 날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진 않았니?
미안해. 돌아와줘서 고마워.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개와 사람의 견(犬)상이몽. 그런데 이것이 과연 개와 사람, 즉 동물과 사람만의 것일까? 서로 말이 통한다고 우리는 꼭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던가? 별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화를 내는 연인을 보며 그 사람이 너무 낯설게 느껴진 적, 겉으로는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했지만 사실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적, 서로의 속내를 나중에야 알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속으로 물었던 경험 등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상이몽 또한 심심찮게 벌어진다.
버지니아 울프의 『플러쉬』는 이러한 관계의 긴장을 다루는 책이다. 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가 당대 최고의 시인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이 키우던 개 ‘플러쉬’를 주인공으로 쓴 개에 관한 전기로, 인간과 개의 관계를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주인 바렛과 플러쉬는 인간관계 못지않은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평생토록 반복한다. 바렛의 외로움을 달래줄 것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던 플러쉬는 바렛이 운명의 애인을 만나자 그동안 자신이 희생한 것에 대한 배신으로 느끼고 돌발행동을 보이기도 하며, 이런 지나친 질투로 오히려 자기 점수를 깎아버리고도 나중에는 동네 개들의 마음을 훔치고 다니는 방탕견이 되어 나타나 되려 바렛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둘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의 감정을 헤집고 또 보듬으면서 한없이 깊은 유대를 가진 관계로 평생을 함께해나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그를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란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눈빛만 보아도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그를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