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15

마르케스에게 처절하게 빠져드는 초가을

Editor. 지은경

2014년 타개한 소설가이자 정치운동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는 평생을 걸쳐도 모자란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남겼다. 남녀의 사랑, 인간의 슬픔과 고독, 사람들의 우매한 고정관념, 그리고 동시에 그는 모든 사건들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한 사회의 분위기라는 것이 한 인간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것들이 모여 우리의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이런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라고도 부른다. 보다 처절하고 격정적이며 동시에 지고지순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흉악한, 인간의 모든 감정들을 거침없이 펼쳐내는 그의 이야기들은 점점 미궁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와 내가 행하는 사랑, 내가 살아가는 삶이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민음사

운명적인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서양사람들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언급한다. 한 여자와 두 남자, 그들을 둘러싼 삶과 죽음, 그리고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가 이 소설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운명적 사랑을 믿으려는 생각과 사랑을 노력으로 붙잡고 그 끈을 놓지 않으려는 생각 중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일까? 작가는 사랑은 운명이며 그 어떤 흐름과 방해에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과연 그럴까?
9세기, 콜레라가 전 세계를 장악한다. 콜롬비아 카리브해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은 세월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51년 9개월 4일이라는 시간을 버틴다. 가난한 청년이던 그는 부유한 상인의 딸인 13세의 소녀 페르미나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담긴 편지를 페르미나에게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이어간다. 물론 가난한 청년인 플로렌티노를 반길 리 없던 페르미나의 아버지는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페르미나를 강제로 여행 보낸다. 여행의 끝 무렵 플로렌티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깨달은 페르미나는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한다. 그리고 플로렌티노 역시 수많은 여자를 만나며 페르미나를 잊으려 한다. 세월이 흐르고 우르비노 박사의 장례식 날 플로렌티노는 페르미나를 찾아가 자신의 끝나지 않은 사랑을 고백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배경과 사회문제, 사회 풍자 등이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 소설은 사랑의 추구만이 삶을 살아가는 가장 강한 힘이자 삶의 이유라는 결론을 안겨준다.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콜레라의 시대, 그러나 사랑으로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던 시대. 현 시대에도 그런 사랑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민음사

결혼 첫날 밤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친정으로 쫓겨온 앙헬라 비까리오. 그녀는 다그치는 가족들을 향해 그녀의 순결을 빼앗은 자가 산티아고 나사르라고 말한다. 그녀의 쌍둥이 오빠들은 가족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산티아고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비까리오 형제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살인장소와 시간, 동기까지 말하고 다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나사르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쌍둥이 형제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저지를 행동을 예고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이 말려주길 원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뜻이 제대로 관철되지 못한 채 범죄 계획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우연이 중첩되면서 산티아고는 결국 잔혹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소설은 마르케스가 고향 마을에서 실제로 목격했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명예와 복수, 폭력, 거짓증언과 오해로 얽힌 비극적 사건은 27년이 지나서야 진실을 찾기 위해 회상된다. 당시 구경꾼에 불과한 화자는 명예와 죽음 중 어떤 하나가 우스워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명예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관연 정당한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마르케스는 산티아고가 진정 앙헬라를 범했는지의 진위여부는 매우 모호하게 남겨둔다. 그가 집중하는 것은 범죄 수사가 아닌 인간의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민음사

카살두에로 후작의 딸 시에르바 마리아는 시장에 나갔다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다. 이후 후작의 딸이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진다. 종종 집안의 노예들과 어울려 아프리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곤 했던 그녀는 급기야 악마에 씌었다는 오해를 받고 수녀원에 감금된다. 신부 델라우스는 주교의 명으로 시에르바 마리아에게 엑소시즘을 행하기 위해 수녀원을 찾는다. 하지만 그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녀 마리아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소녀는 사랑하는 델라우라를 만날 수 없게 되자 정말로 악마에 씐 듯 사무치게 그를 그리워하며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서른여섯 살 사제와 열두 살 소녀의 금지된 사랑.
“마침내 나는 당신의 손길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최후를 맞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그곳에.”
이 소설 역시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스페인 식민시대 억압과 착취를 견뎌내야 했던 콜롬비아의 사회 분위기, 그리고 카톨릭과 식민지배자들의 우월감, 종교의 이름으로 거행되고 또 묵인된 야만적인 행태들을 세세하게 밝혀낸다. 마르케스는 우리의 삶에 많은 의문을 던져준다. 우리가 행하는 이것들이 옳은 것인지,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이므로 이를 따라야 하는 것인지, 결국 강한 세력 앞에서 약자는 한없이 작은 존재여야 하는 건지. 마치 무조건 대세를 따르고 깊이 고민하지 않고 내뱉는 우리의 말들과 행동, 우리 사회가 처한 모습에 화살을 쏘는 것만 같다. 더불어 미천한 인간의 어리석음에 분노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