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라스페치아의 새로운 활력 피에트로 마리오 베기 시립 도서관

에디터. 김경란 사진. © Luc Boegly © Stefano Anzini 자료제공. Atelier(s) Alfonso Femia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Liguria 지역의 라스페치아La Spezia는 로마 제국 시기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 해군의 핵심적인 기지가 자리하고 있는 항구도시이다. 유명 휴양지 친퀘테레Cinque Terre행 기차에 탑승하기 위해 들른 관광객들에게는 관문 도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분주한 항구 풍경과 대조되는 라스페치아 곳곳의 조용한 매력은 예로부터 여러 예술가와 작가들을 매료해왔다. 단테와 페트라르카는 라스페치아의 경치를 매우 높이 평가했고, 영국 작가 메리셸리는 이곳에서 거주했을 정도였다. 라스페치아만을 일컫는 ‘시인의 만’이란 별칭에도 문인들의 각별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리고 군사 도시로서의 비장함과 예술적 낭만이 한데 배어 있는 이 지역의 깊이를 꼭 빼닮은, 피에트로 마리오베기 시립 도서관Biblioteca Civica Pietro Mario Beghi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피에트로 마리오 베기 시립 도서관은 라스페치아 항구에서 도보로 이십 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큼지막한 건물에 위치한다. 주변의 작은 주택들과 비교되는 이 거대한 건물은 한때 무궤도전차 노선 발전소가 보일러를 보관하던 창고로 활용되었다. 교통수단 발전에 따라 무궤도전차의 필요성이 사라지면서이 공간 역시 역사적 장소로 남겨졌지만, 창고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자 했던 도시행정부의 바람에 따라 2017년 4월 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도서관은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던 모습 그대로 튼튼한 석재 외관을 유지한 채, 건물 정면 우측에 평행 육면체 모양의 건물을 새로 더해 완성되었다. 이 입체적인 구조는 2층 내부 면적을 넓히기 위해 추가된 공간이다.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회색, 황토색과 파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보이는 판금의 외형이 도서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내부 1층은 독서 공간인 동시에 시민들을 위한 문화센터로 활용되는데, 특히 지상층에 여러가지 시설들이 몰려 있다. 어린이·청소년 서가와 더불어 식당, 주방, 72석의 강당과 무대 공연을 위한 탈의실까지 구비되어 있어 다양한 행사를 주최할 수 있는 편리함을 자랑한다.
지상층이 교류의 공간이라면, 2층은 조용한 열람실로만 사용된다. 이곳에는 낮고 흰 서가와 책상이 나열되어있고, 컴퓨터실과 미디어 자료실이 위치한다. 높은 천장과 커다란 창의조합으로 남다른 개방감을 선사하는 덕분에 방문객들은 열람실에서 편히 독서에 빠져들 수 있다. 또한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가지 모양의 조명이 각각의 좌석을 비춰줘 그늘 없이 밝은 독서 환경이 보장된다.
3층에는 스페치노 레시스텐자 및 근현대 역사 연구소 L’Istituto spezzino per la Storia della Resistenza e dell’Età Contemporanea의 역사 기록 보관소가 자리하고 있다. 1972년 설립 이후 리구리아-루니지아나Liguria-Lunigiana 지역 현대사와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해 온 연구소의 문헌과 사진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민족 해방은 이곳 도서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도서관의 명칭 속 ‘피에트로 마리오 베기’가 바로 저항운동가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말 나치 독일 점령군과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파시스트들에 저항한 지방 민족 해방 위원회Comitato Liberazione Nazionale Provinciale(CLNP) 내 다양한 정치 세력들을 중재한 일원으로, 라스페치아 지사 장관으로 활동하며 전쟁 후 일상으로의 전환에 힘써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다.
도서관의 구조를 따라 오르면 자연스럽게 1층에서 강연, 연극, 영화 상영 등의 행사에 참여하고, 2층 열람실에서 맘껏 독서한 뒤, 3층에서 짧은 라스페치아 역사 탐방을 하게 되는, 소소하지만 알찬 일정이 완성된다. 라스페치아 토박이든, 잠시 거쳐가는 관광객이든, 오롯한 고유의 경험을 만들어줄 만한 공간임이 분명하다.
라스페치아 시민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가 깃든 피에트로 마리오 베기 시립 도서관에는 더 이상 보일러가 없지만, 그 자리를 수많은 책, 지적 호기심, 미래 시인과 운동가들의 교류가 메우며 라스페치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April23_SpecialReport_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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