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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1

도와줘요, 유대인 엄마!

글.전지윤

박학다식을 추구했지만 잡학다식이 되어가는 중. 도서관의 장서를 다 읽고 싶다는 투지에 불탔던 어린이. 아직도 다 읽으려면 갈 길이 멀다.


『유대인 엄마의 힘』
사라 이마스 지음
정주은 옮김
위즈덤하우스

아이가 요즘 들어 부쩍 용돈을 달라고 조른다. 그냥 주면 허투루 사용할까 싶어서 차일피일 미뤄두었다. 그러자 아이는 『용돈 좀 올려주세요』라는 책을 들고 다니며 내가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앉아서 헛기침을 시전한다. 사고 싶은 게 있다는 말에 왜 필요한지 물으니 노랫말 후렴구처럼 “다른 애들은 있는데” “다른 애들은 집에서 다 해 준대!”를 반복한다. 조른다고 모든 게 뚝딱하고 나올 수 없는데 말이다. 아, 지혜가 절실하다. 그래서 유대인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경제교육을 시작한다고 하니 말이다. 많은 경제교육 책들이 있지만 사라 이마스Sara Imas의 『유대인 엄마의 힘』이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내 손에 들어왔다. 동양인이자 유대인인 저자가 나의 어려움과 실수를 잘 헤아리며 적절한 방법을 알려줄 것만 같았다.
사라 이마스는 중국에 정착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중국인으로 평생을 살다가 이혼한 뒤에 상하이를 떠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해외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이주를 권장하는 정부 정책에 따라 이민국과 이웃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정이 새로운 환경에 온전히 정착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중국과 이스라엘, 대도시 상하이와 이스라엘 북부 소도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만도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사라는 하루가 남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열심히 기르며 생계를 꾸려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사라는 등교하는 아이들의 운동화가 젖을까 마음이 쓰였다. 마른 운동화를 챙겨 들고 학교에 찾아간 그녀는 아이들의 신발을 보송보송 마른 운동화로 갈아 신기고 젖은 운동화는 집에 가져와 헤어드라이어로 말려 놓곤 했다. 이토록 헌신적인 그녀의 모성애를 두고 이웃들은 잘못된 가정 교육을 퍼뜨리지 말라며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면 공부에 영향을 미칠까 봐 당신 혼자서 다 한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아이들도 자신이 가족의 일원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깨달으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할 테니까요.” 따끔한 조언에 사라가 느꼈을 무안함을 짐작하며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라는 이를 비난이 아닌 건전한 충고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교육법에 현명하게 적용한다.
유대인의 가정교육은 아이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성실하게 기본을 실천하도록 하는 데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이들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가장 좋은 방법이 노동이라고 여기는데, 정직을 최고 덕목으로 삼는 유대인들에게 노동은 가장 정직하게 돈을 버는 길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자녀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하며 정해진 금액의 용돈을 받는다. 이로써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또한 유대인 부모는 아이에게 재테크 노하우를 일러주기 이전에 시간 관리법부터 가르친다. “시간은 일의 효율, 더 나아가 일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잘 쓰는 아이는 서두르거나 미루는 법이 없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교육과 훈련 방법을 안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의지다. ‘아이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지?’ ‘너무 답답한데 차라리 내가 얼른 해주고 말아버리는 게 낫겠군’ 하면서 부모가 먼저 포기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크면 다 할 수 있게 되는데 그까짓 것 엄마, 아빠가 좀 해주면 어때’ 하는 주위의 오지랖 넓은 참견이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때, 우리의 믿음직한 유대인 엄마가 또 한 번 지혜를 발휘한다.
“부모의 가치관으로 자녀의 인생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아이 스스로 제 몫을 다하고 세상의 정보를 탐색할 기회를 누리도록 부모는 한 발 물러나야 한다. ‘짧은 식견으로 그릇된 교육을 하는 건 아닐까?’ 하고 항상 자문해야 한다. 결국 판단과 선택은 전적으로 아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 테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고, 돌아볼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세상의 문을 열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이 머지않아 좋은 세상을 만들게 되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