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6

당최 알 수 없는 당당한 이야기

Editor. 이수언

『부적격자』 김일두 지음
재미공작소

어느 더운 날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 어이없다가 불현듯 표현하기 어려운 설렘을 느꼈다. 과거의 어떤 비슷한 상황이 어렴풋하게 겹쳐 갑자기 두근거리는 감정에 사로잡힌 것인데, 절대 두근거릴 수 없는 상황 속에 찾아온 반전의 감흥이었다. ‘왜 나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느낄까? 완전히 맛이 갔구나!’라고 자학하던 중, 김일두의 책이 생각났다.
뮤지션 김일두의 두 번째 산문집 『부적격자』는 허구와 실화를 넘나들며 일상의 낯선 이면을 펼쳐 보인다. 하지만 78개의 산문은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봐도 꼬집어 말할 줄거리가 없다. 이를테면 맥도날드에 들러 “가급적이면 소스를 많이 넣어주세요.” “치즈 두어 장 더 넣어주세요.” 라는 시시껄렁한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주문을 던지거나, 미숫가루를 파는 가게에서 본 ‘삼춘’들의 이야기를 곱씹어 생각해보다가 가슴 속 작은 방, 핑크색 하트 박스에 관한 철학을 풀어놓는다. 오락가락 바뀌는 내용이 머리에서 정리되지 않아 끊어 읽으며 요약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뭐 이렇게 심각할 것까지’라는 생각에 마음을 비우고 다시 읽다 보면 이상한 그의 독백에 매료당하게 된다. 지나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숱한 감정과 사건들을 때론 1978년생의 아재의 일지처럼 거칠고, 때론 세상 나쁜 것 하나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처럼 기록하는 분열적 문체 때문일까.
책을 덮을 때쯤 김일두의 말이 들려온다. “하지도 못하는 게 욕심만 많아가지고…” 그래 맞다. 좌절 앞에서마저 설렘을 느끼는 나는 아직 진짜 좌절이 뭔지도 모르고 욕심만 많은 애송이일지도. 어쨌든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당히 살다 보면 저자처럼 넉살과 순수함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 수 있는 날이 오리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