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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쿨한 노래, 브릿팝

에디터. 서예람, 윤정 바그베 Yoonjung Barbé 사진. 케빈 커민스 © Kevin Cummins

영국 문화, 하면 떠오르는 많은 것 중 하나는 비틀즈와 댄디한 스타일의 브릿팝Britpop이다. 브릿팝은 90년대 중반에 나타났던 영국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의 하위 장르를 일컫는다. 오아시스Oasis, 블러Blur, 펄프Pulp 등이 대표적인 1세대 브릿팝 밴드로 여겨진다. 브릿팝은 80년대 말 미국의 라디오 차트를 휩쓸기 시작했던 힙합 음악과 너바나Nirvana로 위시되는 그런지록Grunge에 대한 다분히 영국적인 반발로 출현했다.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멜로디가 아닌 비트와 박자감에 초점을 맞춘 신생 장르에서는 자신들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기타가 선두에 서는 고전적인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브릿팝의 시작에는 이처럼 1960년대 비틀즈로 대표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즉 영국적인 음악과 스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비틀즈의 유산과 함께 브릿팝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록과 댄스를 결합하는 시도를 하던 맨체스터 인디 신, 일명 ‘매드체스터Madchester’ 신의 음악이었다. 당시 맨체스터 인디 신에서는 90년대의 우울한 노동자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노래들이 많이 불렸다. 브릿팝 밴드들의 대표곡에서도 음울한 가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음악, 이들이 불러일으킨 현상에 ‘팝’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90년대 초 미국에서 태동한 마이클 잭슨이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보컬이 강조되는 디바 음악처럼 비교적 밝은 분위기의 덜 복잡하고 듣기 쉬운 선율이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냉소적이어 보일 정도로 어두운 가사에 비해 팝처럼 쉽고 비교적 밝은 멜로디는 브릿팝의 묘미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브릿팝’이라는 용어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영국 팝 음악; 기타가 중심이 되는 몇 영국 밴드들의 음악으로, 1990년대 초중반에 처음 인기를 얻기 시작해 매우 영국적인 영향을 불러 일으켰다.” 브릿팝은 영국의 음악잡지인 『사운드(Sound)』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등 영국 출신의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브릿아트 Britart’라고 분류되면서 함께 널리 퍼졌다. 보수당의 18년 장기집권이 끝나고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의회가 구성되었던 1997년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ia’ 시기 직전에는 모든 미디어에서 브릿팝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브릿팝 현상이 배출한 많은 밴드들은 영국적인 상징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들이 추구하던 스타일은 우리가 흔히 ‘댄디’라고 할 때 떠올리는 모습이다. 1960년대에 있었던 모즈Mods 운동과 그 당시의 젊은이들처럼 말이다. 완전히 로커 같은 모습이 아니라 비틀즈의 초기 패션과 비슷한, 슬림핏의 맞춤옷을 입고 재즈를 듣는 모더니스트 청년상을 재현한 듯한 모습을 브릿팝 음악가들도 추구했다. 이런 이미지메이킹은 밴드들이 오롯이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고, 어찌 보면 영국 사회 전체가 기울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영국 국기는 브릿팝의 아이콘처럼 콘서트장이나 잡지 화보와 표지 등 음악가들의 얼굴이나 말이 소개되는 모든 장소와 지면에 사용되었다. 밴드들 자신도 영국이라는 지역성과 억양을 강조하고 영국의 생활문화나 실제로 있는 동네와 장소를 가사에 언급하기도 했다.
문화적 재탄생을 겪던 영국에서 브릿팝의 성공은 대중음악 현상 그 이상이었다. 브릿팝의 세계적인 선전 이후 ‘쿨 브리타니아’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미디어에서 사용되었고, 미디어는 런 던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수도라고 추켜세웠다. 이처럼 브릿팝의 성공은 영국이라는 국가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국 음악의 높은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기준을 세우면서 음악가들은 영국적인 삶의 방식이나 전통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국에 새로운 국가적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브릿팝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저 역사적인 해프닝으로만 남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포스트 브릿팝’으로 불리는 밴드들이 21세기 대중음악에서 빼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대중의 사 랑을 받았다. 라디오헤드Radiohead, 콜드플레이Coldplay나 트래비스Travis의 음악은 훨씬 더 많은 대중과 음악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태동했기에 어찌 보면 복고 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브릿팝은 더 강한 영국색을 입어 오히려 미국의 메이저 대중음악과는 다른, ‘얼터너티브’하고 ‘마이너’한것으로 소비되었다. 여기에 팝적인 멜로디가 더해지자 과거의 ‘영국의 침공’에 비할 만한 큰 성과를 낸 것이다. 21세기 록 음악 장르에 있어서 포스트 브릿팝은 가장 성공한 장르, 가장 메이저한 장르로 회자된다. 음악적으로는 하도 반복되고 널리 들려져서 클리셰라고까지 할 만큼 대중적이지만, 여전히 콘서트장에서는 떼창할 수밖에 없는 노래로 말이다.
November20_Inside-Chaeg_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