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of Life : 삶의 아틀라스

단순함으로의 감각적 접근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Norm Architects, 『Soft Minimal』, Gestalten 2022

얼마 전 살던 집에서 이사를 했다. 커다란 창문 앞에 작은 마당이 있고, 숨을 앗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인왕산 자태가 펼쳐진 풍경은 집을 선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보겠어’ 라는 마음에 끝없이 올라야 하는 가파른 오르막길도, 이삿짐을 옮길 사다리차가 진입할 수 없는 불편함 따위도 아주 쉽게 무시되었다. 짐을 옮겨 주신 기사님의 제안에 따라 3일에 걸쳐 이사를 했다. 트럭에서 짐을 내린 후 좁은 골목을 지나야 현관문 앞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박스를 하나하나씩 옮기시는 기사님의 표정에는 점점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죄송한 마음에 나도 함께 박스들을 열심히 날랐는데, 몇 번을 오가다보니 이삿짐 안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내 삶의 무게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필요한 것일까? 허영과 사치, 쾌락에 따라 사재기하고, 버리지 못한 채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고 있는 삶인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물건들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우리의 공간을 채우는 것들은 각자의 감각에 의해 모인 것들이고, 그 물건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하니 말이다. 서양속담에 여유로운 사람일수록 가볍게 살며, 또 가볍게 여행한다는 말이 있다. 어디서나 가볍게, 꼭 필요한 것만 지닌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잘 알고 또 들여다본다는 뜻이기도 할 테다. 이러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록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 것이 얼마나 가뿐하고도 행복할까 싶지만, 막상 현실은 수많은 핑계와 이유들로 가득 채워지기 마련이다.
꼭 필요한 것만 놓인 공간, 바람과 빛과 그림자가 시간에 따라 놀이할 수 있는 공간에서 최소한으로 함축된 일상을 살아간다면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여기, 따뜻하고 지속 가능하며 감각적인 미니멀라이프로의 접근을 시도하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코펜하겐에 본부를 둔 ‘놈 아키텍츠Norm Architects’는 거주자의 생활을 최대한 고려해, 다양한 쓸모를 발휘하는 최소한의 오브제들을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가구들에 적용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공간은 유행이나 기술보다는 몸과 마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이 아닌, 공간에 머물며 생활할 당사자가 좋은 느낌을 받는 것에 목표를 둔다.
이들은 삶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미니멀한 공간을 꿈꾼다면, 삶의 패턴 또한 최대한 미니멀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는 일상 속 행동과 물건들에 충실하자는 철학에서 시작한 것이고, 매순간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행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놈 아키텍츠는 인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전해지는 가장 인간적인 삶과, 그 안에서영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담은 오브제들과 공간을 소개한다.
물건 대신 바람과 햇살로 가득찬 공간은 그림자가 드리우는 우주의 한 공간을 연상시키며, 가구들은 인체공학적이지만 장식적인 군더더기는 제외한, 그래서 가장 쓸모 있는 디자인이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철학을 계승한다. 인류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자연의 색을 토대로 디자인된 공간은 단순하고 명확한 생활양식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Soft Minimal』은 다양한 공간을 통해 여러 미니멀한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무릇 공간이란 삶의 흔적들로만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따뜻한 빛이 들어오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앉아 나누는 즐거운 이야기가 머무르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공기가 드나들 수 있다면 더욱 아늑할 것이다. 멋진 미니멀라이프는 최대한 자연에 가까우면서도 인간만의 특징을 담은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 되어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간은 이제 어느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변화해 가야 할까? 멋진 공간 연출법은 생각보다 소비지향적이지 않다. 스스로의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삶을 바라본다면 그 속에서 참된 휴식과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줄 개성 있는 미니멀라이프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April23_AtlasofLife_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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