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19

다른 방식으로 보기

Editor. 최남연

커피를 하루에 세 잔씩 마시면 어떻게 되나 제가 실험해봤는데, 죽진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커피 세 잔에 박카스 한 병을 마셔도 너무 피곤하면 꿀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하핫.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지음
열화당

영국의 평론가이자 화가, 시인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가 쓴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1972년에 나온 책이다. 5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이 책은 대학이며 대학원에서 수업 교재로 쓰이고, 미술 좀 안다 하는 이라면 모두 읽는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BBC를 통해 방영했던 작가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인데, 시선gaze을 둘러싼 성차와 권력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글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그의 통찰을 따라가 볼까 한다.
우선, 작가에 따르면 한 시각 이미지는 한때 무언가를 누군가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창작자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도 반영돼 있다. 작가는 이를 전제로 유럽의 유화들을 살펴본다. 특히 자세, 옷차림, 상황 등 여성을 그린 방식에 주목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는다.
남자들은 행동하고 여자들은 보여진다Men act and woman appear.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시선의 주체는 남성이었다.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자유와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반면 여성은 그 시선의 대상이 된다. 단지 ‘눈앞에 있으니’ 보는 게 아니라, 여성은 남성을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그곳에 있다. 작가는 누드화를 예로 드는데, 루벤스의 <모피를 걸친 헬레네 푸르망>(1638)이나 앵그르의 <오달리스크>(1814)를 보면 여성은 관객(남성)이 보기 좋도록 몸을 뒤틀어 부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성이 시선을 소유하고 여성은 대상이 되는 관습은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누가 누구를 빤히 쳐다볼 수 있는지, 눈이 마주쳤을 때 누가 먼저 시선을 피하는지 떠올려 보라.
시선을 둘러싼 존 버거의 주장은 이후 1975년 영화 평론가 로라 멀비가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에서 ‘남성 시선male gaze’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며 보다 정교해졌다. 지금도 이 두 글을 보통함께 배운다. 그러나, 어쨌든 같은 얘기다.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성이 시선의 주체가 아닌 ‘대상’ 자리에 익숙해지면, 남성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대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남성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재단한다. 가부장제의 시선에 물든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
한편 최근엔 더 이상 ‘보여지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탈코르셋 운동이다.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더 이상 남성의 눈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걱정하지 않는다. 미디어에선 종종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는 이로 이들을 단순하게 묘사하지만, 시선에서 오는 권력의 차이를 전복하려는 것이 탈코르셋 운동의 핵심이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조금 움직인 독자라면, 일단 내 방식대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 보길 권한다. 첫째로 당장 거울에 비치는 내 몸 이곳저곳을 다시 보자. 이 단계를 넘어서면 행동, 태도, 생각 그리고 나아가 내 삶을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작가가 제목을 단수형 ‘the way of seeing’이 아니라 복수형 ‘ways of seeing’으로 붙인 것은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여러 다른 보는 방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정답은 없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아무리 즐거운 소일거리라 하더라도 그것은 더없이 무익한 일이며, 가치를 측정하는 사람들의 규정에 복종하는 것은 가장 굴욕적인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쓰며 자기 자신의 기준대로 쓰고, 살기를 권했다. 다른 이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자.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기준을 가지자. 내 몸과 삶의 주인은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