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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6

늑대와 너구리 그 중간에서 내린 결정

Editor. 김지영

『동창회 폭로전』 스테디스튜디오 지음
스테디스튜디오

어느 날 동창회를 한다는 문자가 왔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핸드폰 번호를 바꿨는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당황스러웠다. 친한 친구 한두 명만이 내 번호를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 번호를 흘렸을 리 만무하다. 학창시절을 인생에서 묻고 싶어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동창회 폭로전』은 표지와 띠지의 조화가 독특하다. 제목은 ‘동창회 폭로전’이지만, 표지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단어는 오직 ‘동창회’뿐, 나머지 ‘폭로전’은 띠지로 가리고 ‘□□□’으로 처리했다. 그들의 비밀과 속사정에 대한 간접적 언급과 더불어 상상을 자극한다. 띠지와 표지는 제목뿐 아니라 그림도 다르다. 표지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놓인 레스토랑 테이블이 그려져 있다면, 띠지는 엉망이 된 테이블과 분노에 가득 찬 등장 캐릭터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책은 누구나 동창회에서 겪을 만한 혹은 목격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는 여우, 늑대, 캥거루, 원숭이, 너구리 다섯 동물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을 동물로 빗대어 표현한 점에서 이솝우화와 비슷하지만, 독자가 그들을 단면적 이미지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개개인의 속사정과 과거를 서술하여 이솝우화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이 예쁘고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한 신파 소설이 아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당신이 늑대, 여우, 너구리, 원숭이, 캥거루일 수도 있으며,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로전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