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나와 당신, 그들의 얼굴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스냅사진 사진. 송기연

최근 인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일일 40만 명에 달하고 사망자 수는 4,000명가량에 이른다는 뉴스를 봤다. 치료용 산소 부족 사태가 악화되자 병원에서는 산소통 약탈이 일어나고 암시장에서 산소 거래까지 만연하다고 한다. 공원 또는 주차장 같은 공터에 임시화장터를 만들고 불을 피워 시신을 태우는 장면을 포착한 로이터Reuters의 사진은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지금의 인도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회, 경제적 약자들에게 팬데믹은 가혹함 이상의 불행과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페이스홀릭 더 아시아』의 표지에는 한 노인의 얼굴이 등장한다. 굽이치는 백발 수염과 머리 위 하얀 터번이 황갈색 피부와 멋진 대조를 이루는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살아낸 시간의 길이와 삶의 굴곡을 새긴 듯 노인의 얼굴에는 주름골이 깊이 패여있다. 그럼에도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안광은 총총한 기운을 내보인다. 정면이 아닌 살짝 틀어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 는 노인의 묘한 아우라는 이 책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책에는 가진 것이 많지 않거나 말끔히 정돈되지 않은 채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담겨있다. 남보다 더 많이, 남 보다 더 빨리… 모든 목표에 ‘남보다 더’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버린 우리 눈에 이들의 삶은 다소 생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과 표정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귀 기울일수록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나는 사진작가 송기연이 찍은 『페이스홀릭 더 아시아』의 얼굴들에 ‘홀릭 holic’되어 버렸다.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의 표정을 기록하는 것인데, 이유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개인의 과거와 사회의 과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과한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또한 희망을 보게 된다. 피사체가 되어버린 그들의 시간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되고, 나는 그들의 희망과 미래를 듣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나의 미래이고 희망이 된다.”
비싼 옷은커녕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이도, 장난감이나 놀거리를 제대로 갖춘 아이도 없다. 초롱초롱한 눈에 호기심과 장난기가 그득한 아이들은 볕에 그을리고 바람에 튼 얼굴이지만 작 은 입가에는 웃음이 번져있다. 입고 있는 옷이며 신발, 머리에까지 흙과 검댕이 잔뜩 묻었고 손톱 밑에는 까맣게 때가 꼈지만 하나같이 귀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서로 바라만 봐도 어쩔 줄 모를 만큼 사이가 좋은 할머니와 손자에게는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새카매진 작업복을 입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다리에 기대어 웃는 손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사진 속 인물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흙바닥에도 아랑곳 않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 중 누가 ‘엄마’ 하며 달려갈지 궁금해진다. 볼에 손을 괸 채 졸고 있는 노점상 여인은 새벽같이 일당을 벌러 나왔을 것이다. 눈을 감았지만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는 주름진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표정은 단순하지만 표정은 무한하다. 앞으로 태어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나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촬영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록을 먼 미래를 향한 메시지로 보낼것이다. 때로 그것은 과거가 미래에 보내는 절망일 수도 있으며 희망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나의 사진이 한 시대를 상징하는 희망으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18년간의 직장생활 후 2012년부터 전문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송기연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여러 도시의 현재, 그리고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페이스홀릭 더 아시아』에는 아시아 대륙 여러 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담았다. 그는 피사체가 짓는 표정을 통해 그 인물의 감정은 물론 한 인 생의 소회마저 옮겨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가의 손가락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은 먼 과거에서부터 현재로까지 쉬지 않고 흘러온 시간을 드러내며 아직 시간이 닿지 않은 미래까지도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가 관찰한 모든 이들의 얼굴과 시선, 표정은 카메라를 챙겨 떠났을때 기대했던 그대로다.
전문사진작가에게도 인물사진 촬영은 유난히 어려운 작업으로 손꼽힌다. 살아있는 인물을 사진에 옮기려면 그 사람의 얼굴뿐 아니라 기분과 표정, 시선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스럽기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카메라 장비를 갖춘 것도 아니고, 특별히 사진을 잘 찍는 테크닉도 없다고 말하는 송기연이 아시아의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페이스홀릭 더 아시아』에 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어디서 만난 누구에게건 낯섦을 허물고 진심의 미소로 다가가 진실한 표정을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나는 내 사진의 특징을 발견했다. (…) 왠일인지 나는 사람을, 그것도 상대방의 코앞에서 촬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사람 얼굴 촬영이 제일 어렵다는 말에 대한 어줍잖은 도전이 그 시작이었다. 도전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 결과는 다시 도전을 부추겼다. 일년, 이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어느새 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십 년쯤 지났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사진 속에서 그들의 표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늦은 발견이었지만 나는 비로소 행복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사진을 찾았기 때문이다.”
June21_Inside-Chaeg_01_08
Please subscribe for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