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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나를 잃지 말아요

Editor. 박소정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살기 위한 걸음마를 배우는 중.
세상의 다양한 적에 맞서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을 섭취 중.
집사가 될 날을 고대하며 길고양이들과 교감 5년 차, 고양이만이 세상을 구하리라!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사계절

일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을 잃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두 시간이면 쉽게 끝날 줄 알았던 보고서가 반나절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바짝 오기가 올라 전투력이 필요 이상으로 상승한다. 고요한 사무실에서 아무도 누구도 모르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은 이 상태에서는 모든 게 적이 될 수 있다.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 프린터부터 수다 삼매경에 빠진 동료까지 말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를 잃는 순간의 정점은 타인을 상대할 때가 아닐까 싶다. 생전 처음 만난 이와 어색함을 풀기 위해 틈틈이 웃음과 리액션을 보이며 단전에서부터 친화력을 끌어낸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통하지 않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구태의연한 연결 고리를 찾는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기도 하며 인간의 마음과 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노고 때문에 어떤 이는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를 나눠, 일터에 나갈 때는 공적인 자아로 무장해 혹시 모를 사고와 부상에 대비한다고 한다. 어떻게 스위치 켜듯 사람이 두 가지 모드가 될까 싶지만 집에서 침대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나와 일터에서의 나를 비교해보면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일하는 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매력적인 제목이다. 때문에 늘 같은 소리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저자가 ‘강상중’이었다. 재일 한국인 2세인 강상중은 여러 편견과 역경을 뚫고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인물로 일본 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이 책은 9월에 나온 신작으로 그의 직업 철학을 밝히며 일을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인생을 만들어가는 동력으로써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관한 생각을 전한다.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일을 그저 생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는 일을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움’의 표현 수단이라 정의한다.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한 시대에서 나를 지키며 일하기 위해 스스로 일의 의미를 정립하고 다양한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전한다. 사실 왜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일을 할 때 만족감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매우 드물 것이다. 깨어 있는 시간 중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기에 이 시간 동안 생각하고 소통하며 얻는 것들이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칠뿐더러 장기적으로는 한 사람의 인격을 쌓아가는 사회화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가 일을 할 때 매일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질문해 봐야 한다고 전한다.
한편 다른 차원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이든 하나에 올인하는 경우는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은 물론 삶의 방식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경제용어로는 ‘리스크 헤지Risk Hedge(위험 분산)’인 셈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사회에 한 가지를 정해 100퍼센트 투자해 위험을 키우기보다는 다양한 가치관을 세워 놓는 것이다. 단, 이는 한 가지에 정통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일과는 다르다. 일이 하나의 축이라면 이에 못지않게 개인 생활과 취미, 봉사 등의 것으로 다른 축을 세워놓는 것이다. 이때 하나의 축만 있는 사람이 흔들리는 것은 삶 전체를 흔들려 위험에 빠질 수 있지만 여러 축을 가진 사람은 하나의 축이 좀 흔들리더라도 다른 축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책에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은 무엇일까’란 질문에 실질적이고 명쾌한 방법에 관한 답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책을 읽어갈수록 생각은 더욱 복잡해지고 고민은 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지키며 일하는 것이 결국 나를 키우며 살아가는 삶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더불어 불확실한 시대에 ‘행복’과 같은 허황된 질문을 두고 자기계발로 이어지는 좁은 길 대신 자신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보다 자신 안에 다양하고 넓은 길이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