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나다운 집 마련의 꿈

에디터 : 최고요, 김민선, 김수미

최근 몇 년 동안 집과 관련된 기사들은 유독 무시무시했다. 집값이 한참 폭등하던 시기, 집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는 뜻의 ‘벼락 거지’ 같은 신조어가 나돌았고, 전 국민이 당장 집을 사야 할 것만 같은 가스라이팅에 시달렸다. 부동산 경기가 위축된 요즘, 이제 뉴스들은 그때 아득바득 ‘영끌’해서 집을 마련한 이들에게 계속해서 대출 금리가 오른다며 걱정 일색이다. 우리가 웃고, 울고, 다투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잠드는 지구 위 단 하나의 공간을 왜 자꾸만 왜곡되게 바라보아야 할까? 요즘의 인테리어 열풍을 SNS 유행과 주목 경제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동네에 있거나, 이름 있는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어도, 하물며 내 소유가 아니어도 지금 머무는 공간을 가꾸려는 노력에는 적어도 집을 ‘사는 곳’으로 보는 진심이 있다고 믿는다. 이달의 토픽에서는 우리가 ‘나다운 집’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나누기를 바라는 목소리들을 담았다. 이것들이 쌓이고 쌓일 때 비로소 후회와 흔들림 없는 내집 마련도 가능할 테니까.
1-취향 속에 사는 법
공간 디자인 회사 탠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며, 누구나 좋아하는 공간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를 썼다.
우리는 감탄하려고 산다. 수십 년에 걸친 내 심리학 공부의 결론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깊이는 정말로 좋아하는 것, 참으로 아름다운 것의 감탄으로 가능해진다. 뭐가 아름다운 건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생을 살다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이토록 거친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심미안 수업』의 추천사로 쓴 글이다. 이 글을 만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내가 왜 집을 꾸미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스스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예쁜 집도,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집도 진정한 이유는 아니었다. 내 입맛에 맞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의 뒤편에는 갈비뼈 안쪽이 묵직해지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감탄과 감동에 대한 염원이었다. 인생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 내가 세상을 유연하게 살아가기 위해 구해야 할 것. 사회 초년생 시절, 집을 고쳤던 이유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바깥세상에 나갈 힘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돌아와서 ‘오늘도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집에 내가 만들어 낸 작은 감탄들을 심어두는 작업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내가 만들어낸’, 그리고 ‘작은’이다.
으레 생각하듯 이사를 하거나, 일정한 예산을 들여 집 전체를 리모델링하면 최대치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집에 내 취향을 반영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안내하고자 한다.
위대한 발견을 위해, 청소 자신의 취향을 찾기 위해, 혹은 좋은 취향을 가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소와 정리 정돈이다. 건축물 보존 전문가이자 디자이너인 소린 밸브스 Xorin Balbes는 저서 『공간의 위로』에서 삶을 바꾸는 나만의 집을 갖기 위한 첫 단계로 ‘평가-방출-청소’의 과정을 꼽는다. 나의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한 뒤, 필요 없는 물건을 솎아내 ‘방출’하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는지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외모를 가꾸기 위해 치장을 하려면 먼저 깨끗하게 목욕하는 것이 필수이듯, 집에는 청소가 필요한 것이다.
‘집 꾸미기’라는 목표는 거창하고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버리는 일은 비교적 부담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쓸데없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두 정리한 뒤에 끝내 남겨진 물건들. 그 사물들과 함께 우리집을 만들어 가는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그 기준은 저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의 경우 대학 시절부터 늘 침대 근처에 두었던 미니어처 달마대사 모형, 여행지에서 산 액자, 2014년에 엄마에게 받은 편지 등이 그 그룹에 속한다.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이사를 할 때에도 가장 먼저 이 물건들의 자리부터 정하곤 한다.
2-이런 집은 어때요?
『우리말 어감 사전』에서 사물의 겉 형상을 이르는 ‘모양’과 ‘모습’의 미묘한 어감 차이를 구분해 설명한 대목이 인상에 깊이 남아있다. ‘모양’은 추상적이고 유형적인 형상이며 맥락이나 상황과 무관하게 사용된다. 그에 반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형상을 가리키는 ‘모습’은 주로 특정한 맥락이나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얼굴의 모양을 통해서는 실루엣과 같은 윤곽선만 나타낼 수 있지만 모습을 통해서는 피부색, 주름, 솜털까지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모양이 추상적, 유형적이라면 모습은 구체적, 개별적, 맥락적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는 다양한 모습의 집이 등장한다. 공간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드라마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각 인물의 성격과 욕망을 표현하는 방식이 더욱 흥미로웠다. 세 자매는 3년째 열지도 닫지도 못하는 고장 난 창문이 달린 옥탑방에서 산다. 단열도 약하고 방음도 잘되지 않아서 이웃의 소음도 쉬이 집 안으로 뒤섞여 들어온다. 지붕 때문에 천장이 대각선으로 내려오는 화장실에서는 샤워할 때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여서 머리를 감아야 한다.
반면 세 자매의 대척점에 있는 부유한 가문, 원령가의 집은 크고 화려하다. 한눈에 들어오던 세 자매의 집과 달리 층과 벽으로 공간이 구분되며 미로 같은 복잡함을 보인다. 거실에는 큼직한 소파가 TV를 마주 보고 놓여있다. 이는 한국의 주거 공간에서 실내를 구성하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다인용 소파나 카우치를 배치하면,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할 수 있는 활동은 TV 화면을 보는 것 정도로 한정된다. 세 자매가 거실 겸 부엌의 식탁에 마주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과 대조적이다.
원령가 저택은 천장고도 매우 높다. 높은 천장고는 창문을 활용해 많은 빛을 들일 수 있게 하며 개방감을 준다. 하지만 공간이 너무 넓은 탓인지 잘 꾸며놓은 정원이나 바깥 풍경이 실내에서 쉽게 보이지 않아서 묘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벽에는 광택을 띤 금속 프레임이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고, 장식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녹색 대리석, 반원형의 템바보드tembar board, 벽 몰딩을 강조하는 웨인스코팅wainscoting 기법 등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인테리어 요소들이 호화롭게 곳곳을 장식한다. 하지만 집주인의 내면을 반영한 듯 화려함 뒤로 왠지 모를 조악함이 비친다.
세 자매의 첫째 인주는 단열이 완벽한 PVC 새시가 달린, 서울에 위치한 25평 정도의 아파트에 입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그곳에서 세 자매가 구김살 없이 살아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고모할머니 혜석은 인주가 꿈꾸던 아파트를 보여준다. “모든 걸 잃어도 이런 집만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그 말에 담긴 ‘이런 집’은 어떤 집일까? 한강이 보이고, 탄탄한 새시가 있고, 새하얀 그 집은 사실 위치와 전망에서만 벗어나면 한국의 어디에나 있는 아파트 중 하나로 보인다. 선분양 제도로 인해 한국에서는 이사하거나 새집에 들어갈 때 기본 마감재가 미리 결정되고 일률적으로 디자인된 상태에서 입주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집’에 대한 우리의 상상이 집의 모양이 아니라 모습을 구체화하는 방향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데, 왜 모두가 똑같은 모양의 집을 갖기 위해 애써야 할까. 기본 구조 상태에서 하나씩 선택하며 내부를 완성하면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은 물론, 내가 가꾸었다는 자부심 때문에 집이 나와 더욱 가까운 공간이 된다. 나에게 맞는 집은 쉽게,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쌓아가는 일이며, 오랜 시간을 들여 가꾸어 나가는 일이다.
3-활자로 짓는 방 안의 집
건축물의 정면을 뜻하는 단어 ‘파사드façade’에는 문자 그대로 얼굴face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어원에 따르면 창문은 눈, 문은 입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영혼을 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다”라는 키케로의 말을 빌려 짐작건대, 서재가 그 주인공이 아닐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이 글을 읽을 것 같으므로 감히 단언해본다. 이 논리에 조금 더 힘을 보태자면, 건축가이자 건축평론가인 에드윈 헤스코트는 『집을 철학하다』에서 책이 없는 집에 방문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내부 장식이 과도하다 싶을 만큼 완벽했던 집이 그는 안쓰럽기만 했다면서 “책은 벽돌과 마찬가지로 건축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라고까지 강조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전자책이 시장에서 몸집을 불리면서 책을 사는 사람은 대폭 줄었다지만, 서재에 대한 로망은 건재한 듯하다. SNS 및 검색 데이터에서 ‘서재’에 대한 언급은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함께 꾸준히 증가했으며, 2018년부터 2020년까지를 기준으로 보면 그 증가세가 더욱 뚜렷하다.(데이터랩, 2021) 팬데믹으로 인해 집 꾸미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일터나 학습 공간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된 영향도 있기야 하겠지만, 책이 외면받는다고만 여겨지는 시대에 이러한 소식은 고무적이다.
서재를 꾸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기준에 따라 책들을 분류하고, 읽은 책은 틈틈이 처분하며 정리하거나, 아니면 책들이 알아서 생태계를 꾸리도록 내버려 두거나. 호르세 루이스 보르헤스는 대표적인 ‘정리파’다. 그가 쓴 『바벨의 도서관』을 생각하면 왠지 그의 서재도 무지막지할 것 같지만, 실제 그는 수백 권정도의 책만 소유했고(책 쓰는 작가 중에 이 정도는 매우 적은편일 것이다) 그마저도 주변에 자주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정리 강박을 가진 또 다른 케이스로, 불규칙한 것을 혐오했다는 영국 작가 새뮤얼 피프스가 있다. 그는 중구난방인 책 높이를 맞추기 위해 키가 작은 책들 아래에 별도의 나무 받침대를 받쳐 책 높이를 균등하게 맞출 정도로 열 맞춘 책 정리에 집착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서재들을 소개하는 책 『예술가의 서재』속 인물들 역시 이 두 부류로 구분된다. 파리 센 강변에서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운영하는 실비아 비치 휘트먼은 정리파다. 일을 통해 책 정리법을 익힌 그는 집 안 서재도 주제별로 분류한 뒤 저자의 성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다시 정리한다. 미국의 사진가이자 현대 미술가인 토드 히도는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된 서재의 소유자다. 총 6,241권의 책을 사진 스타일이나 학파에 따라 분류한 그는 끊임없이 서재를 정리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질서를 창조하게 돼요. 내가 있는 공간뿐 아니라 내 전체 삶의 질서를 말이죠.”
그러나 대부분의 애서가들은 자가증식하는 책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이른바 ‘방임파’인 이들이 책에 대한 수집욕까지 가졌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증한 장면을 공유하는 건 그야말로 담뱃갑에 붙어 있는 흡연 경고 이미지나 마찬가지일 것 같으므로 여기서는 정제된 이미지로 만나보고자 한다. 노르웨이의 세계적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책 분류 방식은 이렇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 꼭 읽어야 한다고 느끼는 책… 그리하여 그는 무질서 그 자체인 서재를 보유한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필립 림의 경우, 그의 서재는 알파벳 순서도 아니고, 색깔을 맞춘 것도 아닌 채로 온갖 분야의 책이 한데 섞여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혼돈 안에서도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일반적인 정리법을 거부하는 것은 그의 신념이다. “더 이상의 일거리는 원하지 않아요. 책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잖아요!”
양심상 덧붙이자면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에는 책이 쌓이고 쌓이다 욕실 문을 막아버려서 화장실 안에 갇히거나, 가지고 있는 책을 찾지 못해 똑같은 책을 몇 번씩 다시 사고, 심지어 목조로 지은 집이 책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무너지는 현실 공포 사례들이 언급된다. 지나친 방임은 다소 염려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November22_Topic_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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