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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9

일본 옴니버스 소설,그 특유의 냄새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봄

‘출퇴근길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되면 일본 작가의 소설을 짚는다. 실패할 확률이 가장 적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여러 고민할 것 없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만약 그 책이 옴니버스 형식이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옴니버스 소설은 대체로 한 가게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비범한 인물 혹은 독특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또 대부분 주인공이 아닌 타인이 화자이며, 우연한 기회에 주인공에게 도움받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주인공이 비범하고 독특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비함을 지키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터무니없이 당당하거나 괴상한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을 묘사하거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는 장면을 읽게 되면 ‘왜 민망함은 나의 몫인가요?’ 되새김질하게 된다. 아무튼, 옴니버스 소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여러 단편이 묶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끔 온전히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카메오로 나와 괜스레 반가울 때도 있고, 현실판 히어로처럼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꽉 막힌 하수구를 뻥 뚫듯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옴니버스 소설이라 하면 오야마 준코의 『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바로 떠오르는데, 이 소설들은 모두 일본 작가의 작품이다. 이렇게 다른 듯 비슷한 옴니버스 소설이 일본에서 유독 많이 출간되는 이유를 추측해보면 만화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단편만화가 아닌 이상 에피소드 형식으로 연재하는 경우가 많기에 문학도 그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변화했을 거다. 문학계 거물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들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조금은 가볍더라도 흥미를 돋워 잘 팔리는 책을 내놓아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말이다.
앞서 말한 옴니버스에 관한 사견은 최근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와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를 읽으며 정리한 생각이다. 이 책들은 ‘앗코짱’ 시리즈로 이미 일본에서는 출간 2개월 만에 판매량 10만 부를 돌파하고 서점 대상 7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5년에는 NHK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권에서는 ‘앗코짱’이라 불리는 45세 독신 여성 구로카와 아쓰코가 23살 파견사원인 미치코와 점심을 바꿔먹으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2권에서는 앗코짱에게 도움받는 다른 인물의 이야기 그리고 1권과 이어지는 에피소드가 주로 담겨 있다. 여느 옴니버스 소설과 비슷한 구성이지만, 그간 여성의 우정과 서늘한 관계를 잘 보여준 작가의 소설인 만큼 어떤 소설보다 여성과 여성 사이의 오묘한 신경전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앗코짱’ 시리즈와 오쿠다 히데오의 옴니버스 소설은 참 많이 닮았다. 오쿠다의 소설은 독특한 상상력과 도발적인 묘사가 자극적이면서도 웃음을 자아내 이야기꾼으로서 매력적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해 편견보다는 편애에 가까운 감상을 늘어놓곤 했는데, 오쿠다와는 다른 유즈키의 소설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다.
유즈키 아사코는 등장인물 설정에 각별히 신경 썼다. 자칫 잘못하면 히어로처럼 보일 수 있는 앗코짱을 그저 추진력 좋은 여성으로 묘사해 자의적이지 않도록 했다. 특히 소설 속에 외모 탓에 상사가 괄시하는, 스스로를 속여가면서까지 진짜 자신을 숨기는, 연애로 상처받은 여성 등을 화자로 끌어들여 일상에서 겪는 소소하지만 뼈아픈 어려움을 인물 간의 직접적 갈등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과 생각을 통해 간접적으로 깨닫도록 했다.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은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P. S. 이런 유니콘 같은 직장 상사를 현실판으로 만나거나 경험하고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입니다. 어디에도 없어요. 조직 생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