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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조반니 자코모 카사노바

에디터: 박건태

“그 남자 카사노바야”라는 말을 들으면 거부감이 든다. 첫째로, 언급하는 대상이 누구든 구태의연한 표현이 유감이고, 둘째로는 카사노바가 한 범인에 빗댈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사실이 불만스럽다. ‘카사노바’는 바람둥이, 난봉꾼, 오입쟁이의 대명사로 불릴 뿐 고유명사로서, 한 인물의 이름으로서 의미는 희미해져 버렸다. 이름의 유명세는 주인을 익명화시켰다. ‘카사노바’이기 전에 모험가, 외교관, 최초의 세계시민(cosmopolitan), 그리고 매혹적인 연인이었던 그를 피와 살을 지녔던 한 인물로 바라봐주는 이가 드물다. 새삼스럽겠지만 그는 실존 인물이었다. 그의 성명은 조반니 자코모 카사노바(Giovanni Giacomo Casanova)다.

운명의 승부사
카사노바는 1725년 베네치아에서 어느 연극배우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민 신분으로 태어난 데다, 당시 산업화 이전의 유럽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지속되는 굶주림은 결국 프랑스혁명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배고프고 별 볼일 없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비상한 머리를 타고난 그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상황을 타개하고 변화무쌍한 삶을 꾸려나갔다. 유년 시절을 지냈던 하숙집에서는 동급생들의 과제를 채점해주는 반장으로서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에게 음식과 돈을 뇌물로 받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학업 능력과 기지가 뛰어났다. 카사노바의 타고난 총명함과 예술적 재능을 알아차린 교사는 철학, 천문학, 신학,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카사노바는 히브리어와 라틴어에 능했고 고전문학, 신학, 법학 등 다방면에서 우수했다. 열 다섯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지성이 넘치는 그는 베네치아 의원 알비세 가스파로 말리피에로의 눈에 들어 그 덕에 상류층과 활발한 교류를 시작했다. 카사노바는 1742년 파두아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과 타고난 친화력은 훗날 그가 여러 국적과 분야의 권세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밑천이 됐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학식과 매력을 밑천으로 상류층 언저리에서 버틸 수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재능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18세기에는 신분이 미천한 젊은이가 출세하고자 하면 으레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했다. 사제가 되거나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카사노바는 성직에 입문했고 로마로 갔다. 그러나 끊임없는 추문에 연루되고 결국 불의의 누명까지 쓰게 되며 1745년 해고됐다. 다행히 카사노바를 높이 평가했던 교황 베네딕토 14세와 아쿠아비바 추기경은 콘스탄티노플의 베네치아 대사에게 그를 소개했다. 그는 터키에서 머물다가 베네치아로 돌아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잠시 바이올린 연주자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나 곧 부유한 귀족 마테오 지오반니 브라가딘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밥벌이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고 카사노바는 전 유럽을 무대로 본격적으로 화려한 유랑생활을 만끽한다. 파리로 건너가 뛰어난 지식과 화술로 사교계 인사들을 매료시키고 퐁파두르 부인의 총애를 받았다. 스위스, 독일, 러시아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며 왕과 권력자들을 만났다. 계몽주의자 볼테르를 만나 대담을 나누고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그레고리력의 도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1955년 고향인 베네치아에서 난봉, 사기, 연금술 시도 등의 죄목으로 피옴비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지만 그는 그곳을 탈출한 유일한 인물이 됐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는 타인에게 잘못한 적이 없다. 사회 안정을 위협한 적도 없고 남의 일에 간섭한 일도 없다. 내가 투옥된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종교재판관의 애인과 자주 만났기 때문일 거다”라고 썼다. 카사노바의 탈옥기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됐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는 훗날 귀족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즐겨 들려줘 그들의 환심을 샀다. 책으로 쓴 『감옥으로부터의 탈출기』는 당시 베스트 셀러가 됐다.

03_article_inside_01Photography ⓒ Biblioteca del Sol / Louis De Cordier / Johan Tin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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