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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6

깨끗하기 때문에 더욱 더

Editor. 김지영

『컵라면 소녀』 홍유진 글·그림
광전사

미술 수업 시간에 수채화 실습을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괜히 덧칠했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거 같아, 색이 너무 옅은데? 한 번 더 칠해볼까.’ 계속되는 욕심에 한 번 가져다 댄 붓으로 두 번, 세 번 덧칠하면 그림은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독립출판물 『컵라면 소녀』에는 수채화 같은 컵라면 소녀가 등장한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란 질문을 시작으로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녀를 보면 그 끝을 예상할 수 있다.
『컵라면 소녀』 표지는 ‘소녀’의 전형적 이미지를 가져와 전체적으로 분홍빛 색감을 사용했다. 긴 속눈썹을 보이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컵라면의 모습으로 풋풋한 소녀의 감성을 표현했다. ‘어른들을 위한 지독한 동화 시리즈’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만큼 이 동화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우리 안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외모지상주의, 남의 말만 듣다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실 등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동화의 매력은 표지와 내용뿐 아니라 내지에 수록된 일러스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선글라스를 쓴 콜라병과 땡땡이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은 김밥은 저자의 독특하고 자극적인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깨끗했기 때문에 더욱더 쉽게 물들어버렸던 컵라면 소녀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청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배움에 대해 열정적이다. 그런데 막상 취업 문턱에 나서면 두려움이 앞서고 결국 많은 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믿음이 무너져버린 이들은 의지할 데 없이 인중성형이나 손금성형을 감행하고 듣도 보도 못한 점쟁이를 찾아가 굿판을 벌인다.
벼랑 끝에 선 청년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길을 걷고 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방편으로 그들이 성형이나 굿을 선택했다면 이를 꼭 나쁘다고만 말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