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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바다를 닮은 강원
동해안의 책방들

에디터. 서예람

일 년 사계절 언제 가도 바다는 큰 감격을 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바다는 찾아가기 너무 힘들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소중한 곳이다. 강원 동해안의 겨울을 사랑하는 독자들도 많을 터. 투명한 바닷물과 저 멀리 지평선까지 겹겹이 펼쳐지는 흰 파도와 그 소리, 짠내, 희게 빛나는 모래알. 꼭 새해 첫날이 아니더라도, 꼭 해 뜨는 아침이 아니더라도,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겨울에 조용히 걷기 좋은 곳임은 틀림없다. 바닷가 동네에 터를 잡은 책방들을 찾아가 책 한 권 덜렁 들고 나와서 거니는 바다는 더할 나위 없겠다. 여행의 시작이나 끝 혹은 시작과 끝 모두에 함께하면 좋은 강원 동해안의 책방들을 소개한다.
문우당서림
속초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점이자 1984년도부터 책과 사람을 잇는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곳이다. ‘글월과 벗의 공간’이라는 이름 뜻처럼, 문우당서림은 책과 사람 냄새나는 갖가지 활동들로 북적인다. 바깥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는 1층 창가는 북 큐레이션 전시를, 건물 내 계단에는 책과 발췌된 문장들이 전시되기도 한다. 약 9만 부에 이르는 서적을 취급하는 만큼, 한 전시에 무려 238권을 소개하기도 한다고.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들의 제안을 찬찬히 둘러볼 만하다. 지역 내 봉사회나 다문화 한국어 교육, 공예 클래스, 음악회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는 문우당서림은 지역사회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하며 속초의 문화예술창작자들과 시민들을 연결하고 있다. 책을 사기 위해서만 들르기에는 조금 아쉬운, 속초의 새 얼굴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깨북
강릉의 독립출판서점이다. 2016년 12월에 문을 연 이곳은 2020년 4월에 강릉시립미술관 근처 골목이 아름다운 지금의 교동 자리로 이사했다. 강릉 최초의 독립서점이었던 ‘물고기이발관’이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의 깨북 책방지기 부부가 그 명맥을 이어가겠노라 나선 것. 이후에도 여러 번 이사를 다녔지만, 여전히 깨북은 독립출판물을 좋아하는 이들이 찾는 명실상부한 강릉의 대표 독립서점이다. 이름의 ‘깨’는 우리가 아는 그 작고 고소한 깨가 맞다. 깨북은 작은 활동에서 얻는 즐거움과 기쁨의 가치를 전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강릉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 일명 ‘강릉의 이야기 방앗간’이 되려는 이곳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놀이터다. 깨북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며 서점을 찾고 채워주는 고마운 마음에 화답하고 있다. 대단하지 않아도, 소박하고 평범하더라도 누구든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전하는 곳.
한낮의 바다
여행은 평소라면 싫었을 수도 있는 복작거림이나 기다림도 약간의 설렘으로 즐기게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 전혀 피곤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책방 한낮의 바다는 여행에, 혹은 일상에 차분한 쉼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책방 이름은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바다의 한 장면을 담은 것이다. 서프보드 위에서 바라보는 한낮의 바다는 반짝거리고 고요하다. 그 고요함과 차분함을 누리기에 충분한 책방이다. 대부분 책방지기가 직접 읽은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책 표지에 끼워진 서점지기의 추천글과 인상 깊은 구절을 표시한 ‘한낮의 페이지’를 발견하면 고요한 가운데 두런두런 좋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한 권의 책, 한 명의 사람과의 만남을 모두 귀한 인연으로 여기는 책방지기의 취향이 가득 묻은 이곳에서의 낮 시간, 커피 한잔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바다가 보이는 위치는 아니지만, 책방에서 따듯한 감성을 충전해 바다로 나간다면 매서울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슬몃 미소 짓게 될지 모른다.
고래책방
강원 강릉은 율곡 이이, 허난설헌과 같은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문학의 향기가 흐르는 이 도시에 자리한 고래책방은 출판과 서점업이 어렵다 한들, 그래도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일개 책방을 넘어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의 변신을 시도했고, 그에 걸맞게 이곳 1층에서는 지역 공예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강릉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따로 모아두기도 하고, 매월 강릉의 애서가들로부터 추천도서를 받아 전시하기도 한다. 고래가 사는 곳, 바다와 관련한 자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리사이클링이나
해양 환경보호 활동을 하는 예술가나 단체들과 꾸준히 협업하고, 관련 책들을 소개하기도 하는 고래책방은 진정한 동네 책방으로서의 면모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혹 올겨울 여행지로 강
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가장 먼저 이곳에 들러 보자. 지역 영화제나 빵집 등 알짜배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강릉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슬기로운 시작으로 손색이 없을 테니..
서호책방
동해시에 있는 서호책방은 두 아이를 키우는 언니와 싱글인 동생이 함께 꾸려가는, 누구나 환대받는 공간이다. 특별히 아이들이 맘껏 책 읽을 수 있는 ‘웰컴 키즈존’이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
하여 책 읽기 좋다. 바닷가나 번화가에서 약간 떨어진 주거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평일에는 동네 단골손님들의 사랑방이고, 주말에는 여행객으로 복작거린다. 독특하게도 이곳에 비치된 책들은 모두 커버가 씌워져 있는데, 오랫동안 깨끗이 책을 읽고 싶은 두 자매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가벼운 에세이부터 환경이나 인권 문제 관련 책까지 다양한 구성을 선보이고 있으며, 아이와 어른 모두 읽을 수 있는 그림책도 비치되어 있다. 서호책방의 이름은 글 서(書) 좋을 호(好), 즉 책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언니 책방지기의 두 아이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기도 하다. 모카포트에서 보글보글 커피가 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책방은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작은 디테일까지 살뜰히 챙기는, 배려와 사랑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January21_Bookshop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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