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9

그 시절 우리를 둘러싼 공기

Editor. 김선주

읽고 싶은 책은 날로 늘어가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독자.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들을 수집 중.

『싸이월드 감성』
도도봉봉 지음

아카이빙은 독립출판물에서 많이 시도되고 인기도 많은 형식 중 하나다. 『영화카드 대전집』이나 작가 덕질 아카이빙 북 『글리프』, 더쿠문고 시리즈 외에도 서점 아카이빙이나 물건 아카이빙, 기록 아카이빙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아카이빙 북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요가 꽤 있는 것들을 한눈에 보기 쉽게 모음으로써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일반 단행본에서는 볼 수 없는 매니악한 소재를 다루는 경우에는 특히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아카이빙 자체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그에 대한 해석과 인터뷰까지 담아낸 독립출판물이 있다. 독립서점 도도봉봉과 싸이월드가 함께 참여해 만든 『싸이월드 감성』이다.
출간 시기도 절묘하다. 몇 달 전 싸이월드에서 접속 중단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싸이월드 세대들은 소중한 추억이 사라질까 봐 불안해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는 우리도 백업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를 굳이 열어야겠냐는 우스갯소리가 오갔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감성 시대를 풍미했던 싸이월드는 각자의 일기장이자 사진첩이었고, 친구들이나 학교 등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싸이월드라는 플랫폼은 ‘버디버디’나 ‘야후’처럼 그 자체로 그리운 추억이다. 사이트가 폐쇄된다는 건 서로의 미니홈피에 방문해 방명록에 비밀글을 남기고, 일촌 맺기를 통해 인맥을 넓히고, 마음에 드는 사진은 ‘퍼가요~♡’라는 댓글로 흔적을 남기며 담아가던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네티즌들이 아카이빙의 필요성을 주장한 가운데 나온 책으로, 저마다 관통한 시대의 문화를 추억할 수 있는 작업물이다.
도도봉봉은 독립서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출판 그룹으로, 2000년대를 풍미했던 독특한 감성과 오글거림을 단순히 흑역사로 치부하기엔 보편적인 감각이자 트렌드로 해석하고, 왜 우리가 과잉된 슬픔과 감정 노출에 집중했는지 탐구하고자 했다. 여기에 싸이월드가 공식적으로 지적재산권이 담긴 이미지를 제공하고, 당시 인기 있었던 BGM 순위를 합계 내고 감수했다. 싸이월드 본사가 책을 통해 아카이빙에 직접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목차 페이지부터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디자인으로 되어 있어 금세 그때의 감성을 떠올릴 수 있다.
비평, 인터뷰, 에세이 등 접근 방식도 다양하다.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 같은 과잉된 감정과 남발하는 말 줄임표 등은 지금은 흑역사나 ‘중2병’으로 치부되지만, 당시에는 지극히 개인화된 자의식을 드러내는 나름 트렌디한 표현법이었다. 책은 이러한 싸이월드만의 독특한 정서와 글쓰기 방식, 소몰이 창법으로 대표되는 발라드의 인기를 분석하고 그 격렬하고 슬픈 감수성의 근원을 사회와 개인의 관계성 안에서 생각해본다.
싸이월드 감성은 사회적인 것에서 촉발된 문제의식조차도 개인 차원으로 축소할 수밖에 없는, 그 시대의 슬픈 하소연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변화로 촉발된 자기표현의 욕구와 그만한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와 충돌할 때 나타나는 독특한 감수성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싸이월드의 시그니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미니룸을 탄생시킨 박지영 전 싸이월드 디자인팀장과의 인터뷰도 흥미롭다. 미니미와 미니룸 꾸미기 서비스를 비롯해 대중이 궁금해했던 싸이월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빼곡하게 담아냈다. 추억의 미니미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다.
요즘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주로 행복한 모습들이 보인다. 예쁘고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삶의 한 장면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 눈물 셀카를 찍고 슬픔과 우울의 감정을 과잉해서 드러내던 것과는 180도 달라졌다. 그때 싸이월드를 하던 사람과 지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중엔 ‘인스타그램 감성’이나 ‘트위터 감성’ 같은 아카이빙 북이 나와서 ‘좋아요 누르기’라든지 팔로우를 통한 SNS 관계성을 분석하는 아카이빙 북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그때는 또 지금을 둘러싼 문화와 감성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그게 독립출판물이든 다른 무엇이든 꼭 이 시절의 공기를 담아내는 작업물이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