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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8

국민정서와 엇박자 나셨습니다

Editor. 이희조

그동안 야채 안 먹는다고 놀렸던 친구야 미안.

『한식의 품격』 이용재 지음
반비

‘국민정서상 용납이 안 되는’ ‘국민정서 외면’ ‘국민정서와 부합한’ 등 기사 제목에도 자주 등장하는 국민정서는 대체 무슨 뜻일까? 언뜻 봐서 ‘대중의 의견’을 뜻하는 여론과 비슷해 보이지만 국민정서는 ‘정서’, 즉 감정을 더 강조한 말로 보인다. 그래서 ‘여론을 외면했다’고 하는 것보다 ‘국민정서를 외면했다’고 하면 왠지 더 못된 짓을 한 것처럼 읽힌다. ‘어떻게 감히 국민들의 마음을 못 본 체 할 수 있어… 자기만 잘난 줄 아나…’ 같은 느낌이랄까.
국민정서에서 말하는 ‘국민’이 과연 누구를 얘기하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법이나 이성보다 정서가 우리 사회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음식이 특히 그렇다. 아무리 밥숟가락을 한 음식에 같이 넣는 것이 위생적으로 좋지 않다고 알고 있어도, 너무 익숙하고 그것이 정겨운 문화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는 한국인들은 그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또한 만약 김밥이 일본의 노리마키즈시(김초밥)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방송에서 말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최근 한 음식 평론가는 우리나라 요식업의 기원이 거의 일본에 있다는 얘기를 했다가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은 모두 자신만의 정서적 경험을 갖고 있는 대상이며,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곧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뜻이기에 이에 담긴 국민정서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한국에선 음식 평론이 발달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내가 먹는 음식에 대고 뭐라고 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문학 평론이나 영화 평론에 대해선 ‘아 그런 거구나’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에 대해 누가 평가하는 것은 우리 문화 자체를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맛에 대한 평론은 거의 기를 못 편다. ‘오래’ ‘함께’ 먹어온 ‘우리’ 음식이라는 정서적 벽이 맛에 대한 평가를 원천봉쇄한다.
『한식의 품격』은 그런 한식 비평의 불모지에 최근 외로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신(新) 한식 담론이다. 건축 비평으로 평론을 시작한 그는 매우 기능적인 시각으로 한식에 접근한다. 집밥, 손맛, 정성, 노포가 상징하는 전통과 정서적 가치가 아닌, 맛의 원리와 개념을 렌즈 삼아 한식을 도마 위에 올린다. 차례나 제사 때마다 올라가는 전을 놓고 모든 재료를 똑같은 방법으로 지져 재료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음식이라 평하고, 국물은 너무 짠데 재료에는 간이 안 배어있는 국물 음식에 대해선 색깔 없는 요리라고 말한다. 모든 양념을 비롯해 갓 버무린 생생함을 살려야 할 생채소 요리마저도 참기름을 덧씌우는 것을 참기름의 남용이라며 비판한다. 너무 일관된 논리로 모든 한식을 샅샅이 지적해 다소 무서울 지경인데, 정서적 측면만으로 음식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미 포화 상태라 최대한 그 부분을 배제하고 썼다는 설명에 안도해야 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동안 습관적으로 먹었던 음식에 대해 방송가를 장악한 요리 프로그램의 수식어만 화려한 주례사 비평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로 논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어 미각의 언어를 새로 획득한 기분을 들게 한다. 또한 겉으로는 너무나 다른 채식주의자와 채소기피자들이 어쩌면 ‘한국에서 파는 채소 요리는 고기에 비해 폭이 너무 좁고 맛내기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다’는 지점에 같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읽힌다.
물론 이 책의 저자 또한 사대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식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한식을 연구하는 것이라 썼지만 서구적인 기준으로 한식의 맛을 너무 과소평가한 경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 또한 맛을 기준으로 파헤칠수록 정서와 문화가 입맛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이 더욱 강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 모두 결국 한식 평론의 빈약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현재 한식 평론계에는 극단을 오가는 평론가가 존재할 뿐 중간이 없다. 오히려 권위의 무게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 쏠린다. 그들을 비난하는 만큼 그들은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흥미롭게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백종원이라는 인물이 왜 그토록 ‘국민정서’상 호감을 얻고 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가 내 밥상에 손가락질하는 것에 지쳐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 한국 사회에서는 집안에서 실제로 음식을 만들며 맛을 내는 주체와 맛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주체가 다르다. ‘애미야 국이 짜다’로 대표되는, 맛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주체는 보통 가사노동을 분담하지 않는다. 가사노동자는 맛을 통제하고 주관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지 못하고 항상 평가만 받는다. 이렇게 집마다 이미 수많은 밥상머리 평론가가 존재하는 마당에 방송에서까지 그들을 보고 싶을까? 그러니 백종원처럼 “맛 내기 어렵지 않아유” “편하게 해유” 하는 소리가 호감으로 들리는 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