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20

저 같은 흙손도 가능할까요?

Editor.전지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
송한나 지음
책밥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

좋아하는 색은 연두색이다. 녹음이 짙을 때의 깊고 쨍한 초록색도 좋지만, 물이 오른 나뭇가지에서 어느 순간 너도나도 틔운 싹이 점차 자라고 이파리도 커지면서 따뜻한 봄볕 아래 화사한 봄의 색을 입는, 바로 그때의 그 연두색을 좋아한다. 꽃과 식물을 무척 좋아해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플로리스트 양성반을 일 년 넘게 다녔고 자격증도 땄다. 이렇게 열정적인 나에게 고질적이며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내가 무려 ‘블랙 섬black thumb’, 그러니까 흙손이란 것이다. 뭐든지 그때 그 순간에 찾아오는 감동을 온전히 느끼려고 하는 편이라, 고화소를 자랑하는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추고 급기야 휴대전화 사진첩에 담아 오기까지 하는 피사체가 있다면 단연 꽃이나 식물이다. 가로수, 조경수, 꽃집 할 것 없이 찍다 보니 내 집으로 들여오는 꽃과 식물은 좀 많았을까. 입이 두개라도 할 말이 없다.
분명 전날까지 건강한 빛을 내던 식물이 시름시름 앓는 듯 보이면 긴급히 친정엄마 찬스를 사용한다. 소문난 화초 명의(花草名醫), 이른바 ‘그린 섬green thumb’ 조 여사는 시들시들한 화초를 말없이 받아 그녀의 아름다운 베란다 정원에 둔다. 별다른 치료 없이도 식물은 금방 되살아나지만, 행여 또 아프게 될까 미안한 마음에 다시 집으로 데려오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얼마 전 서점에서 책 한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집어 들었다. 가녀린 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초록 줄기와 싱그러운 초록을 뽐내는 잎이 그려진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라는 책이었다. 책제목을 무미건조하게 읽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네? 저요?”

오늘도 꼭 살립시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간담췌장 외과의 이익준은 수술 집도를 앞두고 늘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꼭 살립시다.”
실용서의 존재가치는 독자가 책을그 책을 읽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작가의 제언을 성실히 실천함으로써 독자가 설정한 소기의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었는가에 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그렇고 그런 수많은 실용서들이 과연 독자들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가를 충실히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절대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실용서들이 소장 욕구를 일으키는 사진과 편집 디자인 만으로 독자를 우롱하는 경우가 많다. 충실한 내용과 신뢰할 만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전문서적처럼 일반인이 일상에서 따라 하기 어려운 처방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어차피 없느니만 못하다.
집에서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비법을 전수한다는 책들이 벌써 집에 몇 권은 있고, 사실 디자인과 마케팅으로써 독자를 우롱하는 실용서들이 특히 많아 실용서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요즘이지만 내가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에 거금을 투자한 이유는 간단하다. 저자가 ‘사막에서도 사는데 우리 집에서 못 살겠니’ 하는 마음으로 들인 선인장마저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나와 같은 원예계 흙손들을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인장도 말려 죽인 적 있다며 식물 들이기를 망설인다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사실 선인장 키우는 일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좀 더 식물에 대해 알아본다면 다음 번에는 예쁘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거에요”_ 송한나,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중

반려식물과 함께

식물을 사면 화원 사장님들은 물은 어떻게 주고 햇빛이 어떻게 드는 곳에 놓아라 등의 짧은 설명을 덧붙여 주신다. 시키는 대로 해도 잘 안되니 답답하고 실망감만 커진다. 전문가가 하는 일은 대개 실제 보다 쉬워 보인다. 문제는 내가 이 귀한 식물들을 전문가와 같은 마음가짐과 손길로 보살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있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는 베란다가 있는 집과 없는 집, 큰 창이 있어 채광이 잘 되는 카페나 그렇지 못한 사무실 등의 공간에서 식물을 놓기 좋은 위치와 물 주는 방법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주로 집에서 반려 식물을 키우는 나에게 각기 햇빛의 양을 달리 원하는 식물들의 위치를 사진으로 설명해 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나와 같은 흙손에게 식물을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는 기술’을 전수해 주니 참 고맙긴 한데, 실전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