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5

고양이 여행기

Editor. 박소정

레오나르도 다 빈치, 어니스트 헤밍웨이, 앤디 워홀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고양이 찬양자, 소위 요즘 말로 ‘고양이 덕후’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고양이를 두고 “신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고양이는 시대를 이끌어갔던 유명 인사들은 물론 인간의 친구 혹은 영적인 동물로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한없이 작고 연약한 이 동물이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도 감당해낼 수 없는 당당함?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보적인 매력? 귀여움으로 무장한 외모? 사실 사람들이 내놓는 답도 가지각색이다. 개인적으로 고양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인간의 옷과 물건을 무자비하게 헤쳐놓고, 가끔 예민함을 발산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피를 보게 하여도 그런 것쯤은 고양이의 치명적 매력에 다 묻히고 만다. 빤한 일상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뻔뻔함과 동시에 사랑스러움을 던지는 그들의 매력을 책을 통해 좀 더 깊숙이 탐구해보았다.

『고양이인 척 호랑이』 로베르 브레송 지음
동문선

모든 이에게는 강점과 약점이 있다. 사람들은 부단히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강점을 내세우는 등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이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약점은 아주 간단히 탄로 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부분, 혹은 좌우명으로 내세우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약점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식의 신조를 내비친다면 그는 게으름이 약점으로 그것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주문을 거는 사람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믿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고양이와 호랑이를 보면 위의 속설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깊은 산 속에 사는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홀로 있는 아기 호랑이를 고양이로 착각하여 집으로 데려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름시름 앓던 아기 호랑이는 할머니의 지극정성스런 보살핌 끝에 기력을 회복한다. 이후 나이가 든 탓에 약해진 할머니를 위해 아기 호랑이는 대신 일도 하고 음식도 만들며 오손도손 잘 지낸다. 그러던 중 아기 호랑이가 ‘야옹’ 하고 우는 대신 ‘어흥’ 하고 울고 몸이 커지며 스스로 고양이가 아님을 눈치챈다. 그러나 호랑이는 자신을 부정하고 조금 힘이 센 고양이로 자부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고양이인 척하는 호랑이는 자신과 반대인 호랑이인 척하는 고양이를 만난 이 고양이는 연약한데도 힘을 과시하려 하고, 일부러 ‘어흥’ 하고 울려고 노력한다. 서로 원하는 것을 가진 이 둘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물론 서로 좋아하는 운동도 음식도 취미도 다르지만,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저자가 일 년간 트위터에 연재한 것을 동화책으로 펴낸 이 책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 읽기에도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누구나 서로의 작은 차이나 자존심, 이익 등에 눈이 멀어 상대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가슴속에 각인되어 자신감을 앗아가버리곤 한다. 하지만 동화 속 고양이와 호랑이가 그러했듯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 그리고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그 자체가 스스로의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성숙한 어른으로서 한 발자국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이기적 고양이』 버드폴더 지음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이들은 크게 개파와 고양이파로 나뉜다. 이렇게 나뉜 데에는 극명한 두 동물의 성격과 외모차이가 한몫한다. 여기서 취향을 밝히자면 나는 ‘고양이로 살고 싶다’고 종종 말할 정도로 고양이파에 속한다. 평소 지나가는 길고양이라도 보면 가던 길을 까맣게 잊고 보폭을 낮추어 고양이를 따라가며 행복을 느낀다. 이 책의 저자는 여기에 한술 더 떠 고양이 네 마리의 엄마이자 고양이 중독증 중증임을 자처한다. 저자는 각각 개성이 다른 고양이 네 마리와 동거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고양이로부터 배우는 삶의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저자의 집에는 유일한 여자 고양이로 까칠하지만 가장 정이 많은 씨씨, 완벽한 그러데이션을 자랑하는 샴고양이지만 뭘 해도 엉성해 웃긴 메, 올 블랙의 매력을 뽐내지만 거만한 번개탄, 마지막으로 가장 어리고 애교 만점인 턱시도 고양이 아톰까지 총 네 마리가 있다.
저자가 고양이들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세상만사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평한 자세를 유지한다고 한다. 물론 간식이나 밥을 주는 순간은 예외지만, 고양이는 옆에서 싸움이 나건, 누군가가 넘어지건 말건 한 발 떨어져 세상을 보는 부처님 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사람이 와도 개처럼 소리 내어 반겨주거나 꼬리를 신나게 흔들지도 않는다. 보통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전부 무시하는 태도로 조용히 누워 하루를 보내곤 한다. 저자는 고양이처럼 누워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좀처럼 마음이 편치 않다고 인간의 속내를 전한다. 여하튼 이렇게 도도한 덕에 고양이를 오해하고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따뜻한 속을 가진 아이들이 고양이다. 등을 돌리고 있어도 두 귀는 쫑긋 세우고 사람들의 말에 늘 귀 기울이며, 가끔 기분이 울적하거나 펑펑 울 때는 그 누구보다 빨리 옆으로 다가와 담담한 위로와 애교로 기분을 단번에 풀어준다. 이런 반전 매력 덕분에 각종 옷가지와 가구를 망가뜨리고, 한밤중에 배를 밟고 지나가도 여전히 고양이는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동물, 아니 주인님이다.

『고양이 눈으로 산책』 아사오 하루밍 지음
북노마드

길을 지나다 우연히 고양이를 마주치면 마치 돈이라도 주운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그중 대부분은 다가가면 황급히 자취를 감춰버려 아쉽지만, 가끔 운이 좋은 날은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를 만나기도 한다. ‘개냥이’로 불리는 고양이는 사람에게 다가와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리는데, 가끔 밥은 먹었는지, 집은 어딘지 물어보면 ‘야옹야옹’거리며 대답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나 자신을 탓하며, 내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있어 알아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이런 고양이 성애자들의 마음을 읽은 듯 저자가 고양이의 눈으로 돌아다니며 도쿄와 그 주변을 산책하며 벌어진 소소한 에피소드를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고양이와 자신의 일상을 엮은 책을 여러 권 내며 고양이의 속내를 누구보다 섬세하고 재치 있게 표현해낸다.
주인공 고양이는 어느 저택의 마당에서 태어났지만, 불운하게도 묘지에 버려져 형제들과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다. 그는 나쓰메 소세키 묘지 근처에서 사람들이 놓고 간 음식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다 우연히 저자를 만난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친근히 말을 걸며 쓰다듬어주었던 하루밍 씨를 믿고 그의 속으로 들어간다. 이후 둘은 함께 산책하러 다니며 튀김덮밥이 맛있는 집에 가기도 하고, 특이한 골목을 누비며 그 동네의 사람 그리고 고양이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대화를 걸기도 한다. 한번은 한 유스호스텔 앞에서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고양이를 마주하는데, 통통히 살이 오른 것을 보고 마음속 고양이는 저자에게 “돈 없어도 먹고 마실 수 있으니 좋겠지요?” 하며 저자의 등을 톡 치며 자랑하듯 고양이의 삶을 뽐낸다. 우물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는 옛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을 보며 시간이 지나면 늘 떠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더욱 빨리 교체되는 고양이를 생각하며 수명이 짧은 안타까운 길고양이의 운명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외에도 책 중간중간마다 고양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인간을 놀이에 끌어들이고 싶을 때 하는 행동이나 자기보다 센 고양이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 인간이 항상 자신에게 관심을 두도록 길들이는 법 등 인간보다 처세술에 능한 귀엽고도 대범한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