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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18

고양이 만세

Editor. 박소정

고양이처럼 귀가 밝고, 야행성이며, 창밖 구경을 좋아한다.
고양이처럼 만사태평하고 주관이 뚜렷하며 늘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나는 냥이로소이다』 고양이 만세 지음
반려인 신소윤 옮김
21세기북스

푸르스름한 새벽에 깨어나 주욱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다. 그리고 자고 있는 집사에게 다가가 얼굴을 톡톡 혹은 툭툭 쳐서 깨운 뒤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는 창밖이 잘 내다보이는 곳에 앉아 오늘 날씨를 파악하고 미처 깜박한 고양이 세수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뜨기 힘들어질 때면 스르르 식빵 자세를 취한 뒤 명상에 잠긴다. 이 시간만큼은 날아가는 새도, 나비도 나의 적이 아니다. 말 그대로 물아일체의 시간이다. 시간이 지
나 함께 사는 반려인이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적당히 비비적거리며 하루의 수고를 치하해준다. 그리고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스크래쳐에 발톱을 다듬으며 한밤중 ‘우다다’를 준비한다. 여기까지 여느 집고양이가 보내는 평범한 하루의 모습이다. 고양이 ‘만세’ 또한 집고양이로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이런 평범한 날을 보내게 되리라 예상했다.
세상에,
내 삶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 아기와 반려견이 쳐들어올 줄이야!

만세의 눈앞에 반려인 말고도 생각지도 못한 이들이 들어오며 상상 이상의 묘생이 펼쳐진다. 팔다리를 뻗어 만세 하듯 보이는 동작이 특기라 ‘만세’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고양이 저자는 반려인을 도와 기자로서 또 육아냥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집에는 치와와 백수 형님 제리와 가정 내 서열 1위 아기 지우, 기자이자 지우의 엄마인 반려인1 그리고 그의 남편 반려인2가 함께 사는지라 좀처럼 여유를 갖기는 힘들다. 제리 형님은 걸을 때마다 발톱으로 ‘찹찹’ 마룻바닥을 긁으며 툭하면 번잡스러운 행태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기 지우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소리로 울어대며 모두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는 고양이로서 품위를 지켜나가는 데 흔들림이 없다. 명상을 위해 일부러 특별한 장소를 찾는 인간과 달리 만세는 자신이 식빵 자세를 하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글쓰기에 여념이 없는 반려인1의 발치나 지우가 펼쳐 놓고 간 장난감 사이, 제리 형님의 ‘마약방석’ 위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이를 낳은 후 부쩍 걱정이 많아진 반려인1은 가끔 만세에게만 몰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일주일간 출장을 앞두고서는 ‘내가 탄 비행기가 잘못되면 어떡하지?’라고 묻고, 걱정할 것이 없으면 걱정할 것이 없어서 묻기도 한다. 한번은 손님이 놀러 와서 만세의 범상치 않은 뱃살을 보고는 ‘임신했냐’고 묻자 진지하게 뚱뚱한 만세의 건강을 걱정하며 스마트폰으로 고양이 다이어트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이에 질세라 반려인2는 즐겨보는 웹툰의 다음 회를 기다리며 주인공 걱정에 여념이 없다. 만세는 이런 인간의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누려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짓인가 싶은 한편,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는 그들의 마음 또한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만세는 솜방망이를 모아 기도한다.
내가 사랑하는 인간들이 내일 걱정을 위해 오늘밤 잠자리를 뒤척이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어떤 날에는 고양이처럼 하루 종일 별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에도 맘 졸이지 않는 하루를 지내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