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7

개와 함께라면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샤를로트의 우울』 곤도 후미에 지음
현대문학

샤를로트는 셰퍼드 암컷이다. 은퇴한 경찰견으로 매우 똑똑하고 얌전하다. 대부분의 일에 의연하게 대처하지만 겁이 많고 자기보다 작은 강아지한테 물리기도 한다. 그리고 경찰서나 파출소 앞을 지나면 상당히 겁을 먹는다. 아마도 경찰견으로서의 고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다섯 살의 늠름한 샤를로트가 어느 날 맞벌이 부부 마스미와 고스케에게 오고 나서 이들의 삶은 다소 더 흥미진진해졌고, 크고 작은 놀람의 연속이 이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시시한 일상이 개와 함께하고부터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험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개와 함께하는 삶으로 인해 새벽 산책을 하게 되며 그곳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난다. 개를 키우는 사람끼리 모여 이웃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개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까? 인간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동물인 개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것이다.
『샤를로트의 우울』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 읽게 되는 가벼운 소설이다. 마치 누군가의 강아지 일기를 읽는 느낌이다. 책 속 일상은 개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과정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주인공 마스미가 샤를로트로부터 느끼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겨울철 차 한잔과 함께 읽기 딱 좋은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스미가 전개하는 독백을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나 반려동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며, 개나 다른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각양각색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개를 소유물 혹은 귀찮은 존재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어디든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평화롭고 가벼운 일상을 담은 것 같지만 이 책은 미스터리물로도 간주할 수 있을 정도로 호기심을 유발하며 제법 박진감이 넘친다. 이 때문에 책을 더 속도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스미는 이웃과 동네에서 일어나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을 매번 샤를로트와 함께 풀어가며 때로는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한다. 경찰견이었기 때문일까? 샤를로트는 무언가 수상한 것과 정상이 아닌 것을 감지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책의 시작부터 궁금증을 가득 유발시킨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 가끔 이럴 때가 있지만 대개는 그저 기분 탓이거니 한다. 그러나 그날의 느낌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예감이 빗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 평소 현관에서 기다리는 샤를로트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집 지키는 게 싫어서 애처롭게 낑낑거리며 우리를 배웅하고, 돌아오면 뒷발로 서서 미친 듯이 기뻐 날뛰는 그 아이가 말이다. (…)집안의 모든게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었다. 유리 절단기로 잘린 창. 바닥에는 흙 묻은 발자국이 여럿 찍혀 있었다. 서랍은 죄다 열려 있었고, 서랍 안의 것들이 모조리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듯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샤를로트!”
멋진 털을 가진 샤를로트와 포옹하면 외로움과 슬픔이 달아난다. 2층 침실과 부엌에는 절대 들어 올 수 없지만 결국 개의 해맑은 눈동자에 항복하는 것은 인간이다. 마스미의 삶에 찾아온 샤를로트가 마스미의 마음 깊숙한 곳에 서서히 자리잡는다. 그 과정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어느새 즐거운 마음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저 남의 일기 같은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지만, 개와의 일상을 알아보는 데 이렇게 쉬운 책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와 함께라면, 그리고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면 말로 표현 못 할 경이로운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더없는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개도 있겠지만 불행과 학대의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개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개가 행복해지기를 온 마음을 다해 빌어본다. 사랑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