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rch, 2017

가벼운 일상을 묵직한 독백으로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나의 투쟁』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한길사

아직 책을 끝내지도 못했다. 여러권으로 구성된 긴 이야기 중 이제 막 한 권을 덮은 참이다. 읽으면서 참으로 괴로웠고 또 무거웠다. 그리고 이 한 권 읽기를 끝내기까지 매우 여러 날이 걸렸다. 어느 한 밤에는 자기 전에 책을 읽다가 머리가 아팠고, 또 어느 밤에는 침대 옆에 놓인 이 잘생긴 노르웨이 작가 아저씨의 얼굴이 표지로 나온 책을 집어 들고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리다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 『나의 투쟁』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괴롭지만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무겁고 집요하고 유쾌하지 않은 기운이 서려 있는 책을 왜 나는 포기하지 못했을까? 도스토옙스키가 현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리고 조금 덜 우울하고 덜 비관적이며 또 자신을 덜 경멸했더라면 아마 이 작가와 비슷한 분위기의 글을 쓰지 않았을까?
남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 특히나 남보다 더 불행하거나 끔찍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결코 축복은 아닐 테지만 작가에게는 좋은 작품의 밑거름이 되는 ‘보상’의 작용을 한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나 아버지에 관해 쓰고 싶어 한다. 특히나 생을 마감한 아버지라면, 또 자신과 사이가 멀었거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지라면 작가들은 꼭 자신의 아버지를 책 속에 넣으려 한다. 하지만 생전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보다 더 낯선 아버지와 책에서 마주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바라고 또 바라고 굳은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비로소 실행할 수 있는 커다란 과업인 것이다. 지은이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을 고백하듯 묘사한다. 작가는 이미 작정하고 책의 첫 장부터 죽음으로 사로잡는다. 매우 세세한 묘사는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하지만 결국 그의 상세한 설명 뒤에는 ‘과연 죽음이 특별한 것인가?’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모든 이들의 생일처럼 흔하디흔한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남다른 마음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확 뒤집어 놓는다.
자전적인 소설, 오히려 제 생각을 깊게 후비는 산문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들과 경험 내지는 모험들이 지은이의 독백처럼 묘사되는 이 책은 상당히 자학적이고 중독성이 강하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하는 사건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것들이라는 점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작가는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만들고, 또 매우 어렵고도 피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든다. 작가의 문체 역시 매우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다.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도 않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하듯 풀어냈다. 아버지의 행동반경으로부터 멀어지고자 시간을 계산하던 그의 어린 시절, 또 어린 아들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집안 분위기를 형성하던 그의 아버지, 여자와 처음 사랑했던 순간, 그리고 몰래 술을 마시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일 등 그의 일상은 매일 그가 겪어내야 했던 투쟁이었을까?
자전적인 소설은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실에 도달시키느냐’는 어려운 관문을 마주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속내, 특히 수치스러운 치부를 보여야 할 경우 보통 선택은 있는 그대로 보이거나 혹은 그럴싸하게 감추느냐다. 화자가 결국 자기 자신일 경우 돌파구도 없을뿐더러 그 뒤를 따르는 많은 질문들에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내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돈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꾸미지 않은 독백의 문장들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이 소설을 쓰는 순간들은 그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 2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