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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1

분실할 수 없는 언어

글.김민섭

작가, 북크루 대표. 책을 쓰고,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허블

「관내분실」은 김초엽 작가가 쓴 단편소설이다.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집이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나와 있다. 그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일텐데, 제목처럼 그는 정말로 빛의 속도처럼 눈 깜짝할 새에 우리 앞에 나타났고, 한국의 대표적인 SF 작가가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은 종이책이 사라진 미래의 도서관이다. 이제 도서관은 종이책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추모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방문객 중에는 죽은 부모와 교감하는 어린아이도 있고, 사별한 남편과 감동의 재회를 하는 아내도 있다. 그렇게 재현된 망자의 마인드는 데이터 조각들로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며 ‘그 사람이 지금 살아있다면 뭐라고 말해 주었을까’ ‘살아 있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분명히 기뻐해줄 텐데’와 같은 혼잣말 같은 질문에 답해준다.
죽은 어머니의 마인드와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간 지민은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는 답을 듣게 된다. 이른바 관내에서 분실된 ‘관내분실’이라는 것이다. 생전에는 한 번도 실종된 일이 없고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다 기억할 수 있다는 주인공의 말이 인상적이다. 아이가 아닌 부모가 실종되는 일은 별로 없고, 그의 행선지도 대개 알 수 있으니까. 도서관 측에서는 유족 중 누군가가 마인드를 의도적으로 지웠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지민과 그의 동생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여기까지의 설정만으로도이 소설은 무척 흥미로운데, 조금 더 즐겁게 읽을 만한 몇 개의 주요 지점들이 더 있다. 예를 들면, 한 개인이자 여성으로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든가, 마인드라는 개념이 뇌과학과 연결되는 지점을 살핀다든가, 하는 것이다.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삶을 재현하기를 거부하는 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는 딸과 딸에 대한 애정을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하는 엄마.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세대를 살아야 하는 모녀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는 없는 묘한 감정이 있다”라는 작가의 말이나, “마인드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한 것은 뇌 속의 다양한 화학적 신호들, 펩타이드와 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을 전기적 신호로 데이터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나는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들로서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는 데에는 ‘묘한 감정’이라고 할 만큼 섬세한 것이 끼어들지 못한다. 어머니에게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뇌과학도 내게는 마찬가지로 미지의 세계다.
개인에게 의미를 가진 하나의 물건이 그의 마인드를 형성하고 검색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설정이 기억에 남는다. 지민은 분실된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기 위해 생전에 그가 애착을 가졌던 물건을 찾기 시작하고 출판사에 다녔던 그가 만들었던 몇 개의 종이책 표지를 발견한다. 소설처럼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애착을 가지고 있을 만한 물건을 떠올려보려니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아내든 아이들이든, 잘 모르겠다. 그들은 무엇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하고 있을까, 나는 무엇으로 그들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은 무엇으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지민의 입장이 된다면 아무래도 어머니가 애착을 가진 유품을 찾는 데까지는 비슷하게 행동할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다시 찾은 어머니와 만났을 때 지민과 같은 말을 할 만한 자신은 없다. 어머니를 바라보고 조금 울거나 아니면 “쉬세요, 또 올게요” 하고 곧 돌아설 것 같다.
요즘 나는 어머니에게 “쉬세요” 이상의 말을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면 그 간소한 말이 어머니에게는 애착의 단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매번 사랑한다고 말하는 딸 아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아마 다들 쉬세요, 정도의 말을 하고 헤어지겠지 싶다. 다만 어머니는 돌아선 내 뒤에 대고 차를 조심해라,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언제 다시 오냐, 하고 묻는다. 이 말들은 참, 분실도 되지 않는다. 분실될 틈도 주지 않고 들려오니 말이다. 어머니의 유품을 찾을 자신이 별로 없다. 다만 나와 어머니의 언어가 서로의 데이터 조각으로 남을 듯하다. 나의 언어는 너무나 성의가 없어서 민망한 것이지만, 뇌의 어딘가에, 어디서든 서로를 찾을 수 있는 신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