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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세상에 커다란 웃음을 선사한 슬픈 천재

에디터: 지은경,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 사진: Images Charlie Chaplin © Roy Export S.A.S., Images Chaplin's World™ © Bubbles Incorporated

신성한 코미디, 어려운 사람, 가난에서 영원한 명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온 희극 천재.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낸 사람. 이 외에도 찰리 채플린을 묘사하는 문장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1889년 런던 남쪽에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은 빈곤 속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었고, 찰리가 소년이었을 때까지 가수와 댄서로 잠깐 활동하던 어머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망명해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을 오가야 했다. 찰리가 태어났을 무렵 그녀가 결혼한 남자는 찰리에게 불멸로 남을 ‘채플린’이란 성을 주었다. 그리고 여러 다른 정부들처럼 얼마 안 가 그녀를 떠나버렸다.
찰리와 그의 형제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기에 스스로 지키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부모로부터 자연적인 재능을 물려받은 젊은이들에게 당시 무대는 경력을 쌓을 최고의 기회기도 했다. 찰리의 학교 교육은 막다른 골목에서 춤을 추다가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게 된 9세 때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창조한 첫 작품은 < 브리스톨과 채플린>이라는 백만장자와 방랑자 설정의 1인 2역 무대였다. 그의 이 백만장자 방랑자 캐릭터는 훗날 찰리 채플린 그 자신으로 남게 된다.
보드빌에서 일한 찰리 채플린의 초기 경력은 1910년 그를 미국으로 데려갔다. 찰리는 미국 관객들로부터 즉각적인 인기를 얻었고, 20세의 나이에 스타가 되었다. 그가 만든 캐릭터인 술꾼 채플린은 그가 어릴 적부터 술을 퍼마시던 계부들로부터 보고 배운 것으로 그는 술 취한 인물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깊이 있게 연기했다. 무대 위의 그는 언제나 밝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채플린은 삶에 그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꽤 까다로운 은둔형의 인간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쇼펜하우어를 읽었으며 끊임없이 성적 유희를 즐겼다. 그리고 언제나 환상적인 희극에 매달렸다. 찰리의 초기 영화 작품들은 처음부터 일반인들에게 즉각적인 인기를 얻은 ‘작은 방랑자’ 캐릭터였고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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