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목적 없는 만남으로부터,
저자 정신지

에디터: 김선주
사진: 신형덕

한 명의 노인이 사라지면 하나의 도서관을 잃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들의 지혜는 몇백, 몇천 권의 책으로도 다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을 품고 있다. 정신지 작가는 우리 곁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러한 희망의 존재임을 믿는 사람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생을 관통해온 그들이 담담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가르침이 된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할망에게서 받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지금이 아니고 그들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그 말들을 담아낸 것이 『할망은 희망』이다. 정신지 작가는 고향 제주의 마을을 목적 없이 걷다가 눈이 마주치는 할망에게 다가가 그들이 쓰는 언어로 말을 건다. 할망이 내어주는 다방 커피를 마시며 같이 울고 웃고 노래를 부른다. 이 인터뷰는 그 소중한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녀와 나의 새로운 만남의 기록이다.

제주 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이면서 지역 연구학자이자 방송 리포터, 칼럼니스트, 풍각쟁이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갖고 계세요. 스스로는 어떻게 불리는 걸 선호하세요?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조잘조잘’이에요.(웃음) 책에서 아무렇게나 할머니들을 만나고 다닌 것처럼 제주KBS < 보물섬>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할머니와 즉흥적으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조잘거린다고 할머니들이 그렇게 불러주셨어요. 저를 포장하는 많은 별명이 있지만 저는 그저 할머니들과 조잘거리며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책에는 제주 할망과 만난 5년 동안의 기록이 담겨 있어요. 어떻게 할망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됐나요?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제주도로 돌아왔을 때, 젊음의 방황이나 실연, 실패 등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들 때문에 사람들도 못 만날 정도로 힘들었어요. 모든 게 무너졌다는 생각에 죽을 것 같아서 일부러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걸어 다니다 우연히 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렇게 할머니에게 실연의 아픔도 털어놓게 됐는데,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남편은 내 눈앞에서 총 맞아 죽었다”고요. 할머니의 얘기를 들을수록 ‘아, 이분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뚫고 살아오신 분들이구나. 내가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며 털고 일어서 걷게 됐어요. 그렇게 걸으면서 더 많은 할망을 만나게 됐고요.
제주도는 세 다리만 건너도 다 친척이라 할망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요.
아는 분의 제안으로 지역신문사에 처음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제주가 콘텐츠화되다 보니 아무래도 글 하나 잘못 쓰면 할머니들의 일상을 망치게 될까 조심스러웠죠. 최대한 지역사회를 망가뜨리지 않고 보물 같은 이야기를 퍼트리고 싶었어요. 이야기 팔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돈도 안 받았어요. 다행히 사람들도 그런 걱정을 읽으셨는지 할머니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를 궁금해하기보단 ‘우리 할머니 같다’며 공감해주시더라고요. 제 글을 기다려주시니 저로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할머니들 만나러 다니는 게 즐거운 일상이 됐죠.

그런 고민에도 책으로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할머니들이 저를 약장수라고 불렀는데, 그 말이 맞아요. 저는 약을 만드는 사람과 약을 먹는 사람 중간에 있는 사람이에요. 할머니들이 저에게 나눠주는 것들이 저 하나만 살리기엔 남는 약이라, ‘내가 이 약을 먹어보니 낫더라, 너도 한번 먹어봐’ 하고 나누고 싶었어요. 저는 할머니들에게서 거저 받은 것을 내뱉을 뿐, 책을 읽고 어떤 약을 취하게 될지는 각자의 몫이죠.

정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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