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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August, 2015

이방인의 시선

Editor. 지은경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다른이의 시선으로는 낯설고, 심지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타국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 의견을 갖게 되며 그곳에서가져온 평범한 물건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매우 귀중한 존재가 된다. 다른 시선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고 보잘것없이 느껴지던 것에 빛을 가미시킨다. 고마운 마음 없이 누리던 중력과 공기가 우주의 공간에서 가장 절실하고도 유일한 존재가 되듯, 어느 땐가 다른 시선을 가지는 것은 지루한 삶을 특별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이 신비로운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고 경이로운 발견이었던 과거,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던 이방인의 시선은 어떤 것이었을까? 또한 짧은 거리의 여행조차도 쉽지 않았을 당시 사람들의 기나긴 외국여행은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멜표류기』 헨드릭 하멜
집문당

1653년 네덜란드의 스페르베르(De Sperwer)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폭풍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좌초된,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외국인 중 하나인 헨드릭 하멜의 이야기를 잘 아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않다. 그러나 그가 조선에서 보낸 세월 동안의 기록은 우리에겐 매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와 그의 선원들은 조선에 억류되어 오랜 시간을 살아가야 했다. 그는 버려진 배를 이용해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고 곤장을 맞았다. 당시 효종의 명으로 하멜과 그의 일행들은 한양으로 압송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박연을 만난다. 박연의 본명은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로, 하멜과 비슷한 경로로 조선에 표류하여 훈련도감 근무자로 귀화한 네덜란드인이다. 그는 조선에서 조선의 여인과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 그의 통역으로 하멜과 부대원의 체류를 허락받았으나 조선 땅에 들어온 이방인을 외부에 보내지 않는다는 규율에 따라 조정의 감시를 받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후 청 사신을 통해 두 번째 탈출을 시도했으나 언어의 장벽으로 다시 실패했다. 그러던 중 1666년 하멜과 선원들은 일본으로의 탈출에 성공,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일본 관리에게 심문받은 후 얼마간의 체류 후 1668년, 고향인 네덜란드를 떠난 지 13년 만에 귀국할 수 있었다. 하멜은 이후 그의 여행일기 『하멜표류기』와 『조선왕국기』를 남겼다. 그의 저서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과거가 어떤 모습이었나를 매우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재미있는 것은 글의 이해를 돕기위해 함께 수록된 삽화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하멜의 이야기만을 듣고 상상으로 묘사를 해야만 했다. 따라서 곤장을 맞는 하멜과 그 일행의 그림에서 곤장을 집행하는 조선인들의 옷은 모두 유럽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기와나 초가집 대신 유럽 농가의 집들이 그림 속에 조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타인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그냥 웃고 넘길 옛 이야기지만 제대로 기록된 역사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또 당시 조선이 얼마나 답답한 상황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문서이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
사계절

마르코 폴로는 1254년경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무역상이었던 아버지 니콜로 폴로를 따라 중국을 여행하고 관리로서 원나라에서 일을 하며 17년간 중국의 여러 도시들과 몽고, 버마, 베트남까지 여행을 했다. 그는 여행 중 『동방견문록』을 저술했는데, 이는 그가 여행한 지역의 방위와 거리, 기후, 언어, 종교와 특산물, 동물과 식물 등을 탐사하며 기록한 보고서다. 그의 기록 중에는 일본과 신라에 관한 언급도 들어 있는데 여러 가지 혼동 허구가 들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랍인들에게 황금향(황금이 많은 나라)으로 알려진 나라를 지팡구, 즉 일본으로 언급하는데 사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이는 지팡구가 아닌 우리의 신라를 가리킨다. 『동방견문록』은 서구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시각을 넓혀준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가 직접 경험한 것이고 또 어디까지가 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지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여러 갈래의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이 마르코 폴로가 20여 년간 살았던 쿠빌라이 제국은 물론 13세기 후반의 전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동방견문록』은 대중판이나 포켓판으로만 출판되어왔고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가 번역하여 출판해온 관계로 역사왜곡에 조예가 깊은 일본 역사학자들의오류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 사실이다. 중앙아시아를 심도 있게 연구해온 김호동 교수는 『동방견문록』을 새롭게 번역하여 750년 전 마르코 폴로가 보았던 경이로운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비록 원본은 사라졌지만 수많은 판본을 토대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번역하고 주석을 붙인 김호동 교수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최상의 ‘완역결정본’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규율과 풍습으로 이루어진 과거는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진취적이고 경이로운 문화의 천국이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마르코 폴로가 바라본 동방의 제국들은 신비하고도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였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혜초
학고재

혜초는 신라 성덕왕 때의 고승으로 787년 중국의 오대산 건원보리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인도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에 프랑스인 폴 펠리오에 의해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발견되어 동서교섭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처음엔 당나라의 승려로 여겨지다가 당시일본 서본원사의 승려이자 돈황학자인 오타니가 신라승 혜초의 것임을 밝혀내어 관심을 모았다. 이 여행기는 세계의 4대 여행기로 꼽힌다. 13세기 후반에 쓰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세기 초반에 쓰인 오도록의 『동유기』, 14세기 중반 이븐 바투타에 의해 쓰인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나머지 3개의 여행기지만, 727년에 저술한 『왕오천축국전』은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다. 당시 동양에서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없었다. 8세기 무렵 인도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아랍 나라들에 관해 그가 서술한 생생하고도 정확한 현지견문록은 그가 진정한 세계인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당시 중국과 인도와의 교역로, 그리고 수많은 나라들의 기후와 토양, 풍습, 음식 심지어는 사람들의 성품들을 각각 비교하며 묘사했는데 무엇보다 여행지에 대한 인문학적 자료로 큰 역할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와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고 그들의 문화와 풍습 또한 재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이러한 과거의 문서가 중요한 걸까라고. 하지만 당시 오랜 시간을 들여 타지에서 생활을 하며 문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또 어떻게 다른 민족과 문화와 융합되어왔는지에 대한 보고서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당시 쉽지 않은 조건에서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기록한 최초의 인물이 우리의 혜초라는 사실 또한세계적인 시각을 아직도 충분히 지니지 못하는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