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August, 2015

열정 상실의 시대에 띄우는 편지

Editor. 박소정

“이게 최선입니까?” 만큼 잔인한 질문이 또 있을까. 패기 넘치는 드라마 주인공이라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외줄타기처럼 불안정한 현실에서는 도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열정을 다한 것을 증명하는 것은 보통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점수가 낮다면 게으른 학생이 되고, 며칠간 밤을 세워 발표를 준비했어도 누군가의 구미에 들어맞지않는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불성실한 직원이 되기도 한다.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닥치는 상실감은 더 이상 우리가 달려야 할 의미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 해도 지난 날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점점 몸을 사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여기 실패할지도, 버려질지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열정의 불씨를 계속해 지펴나갔던 이들이 있다. 세계를 구한 영웅도, 신기술을 발명한 과학자도 아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구해나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진실하게 다가온다.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봄아필

얼마 전 세상을 구하는 영웅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를 보았다. 개봉 전부터 각종 화제를 몰고 다니던 영화는 역시나 대박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기승전결이 똑 떨어지는 스토리라인에 화려한 볼거리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초능력으로 세계를 구하는 것에 집중하며 일상 탈출을 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요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일상의 민낯을 고하고 이곳에서의 반전을꿈꾸고 있다. “일상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이다.”라는 카프카의 말처럼, 저자는 우리가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사소한 일상, 곧 사생활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가 영화감독 변영주, 만화가 윤태호, 자연다큐 감독 박수용 등 8명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삶을 바꾸는 이야기와 질문을 얻을 수 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도와 밤새 소와 함께 오솔길을 걷고, 낮에는 소를 팔아야 했던 한 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꽃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이 아이는 훗날 세계에서 한 시간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던야생의 시베리아 호랑이를 1,000시간 이상 기록하며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 자연다큐 감독 박수용은 산속의 한 평짜리 지하 비트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소금 뿌린 밥을 먹고, 몇 달간의 고독한 기다림 끝에 결국 호랑이를 마주했다. 그는 호랑이가 먹을 것을 앞에 두고서도 한 발을 가만히 들고 5분 이상을 기다리는 신중함을 보고, 자아 속의 소통을 읽는다. 즉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삶의 한 발 한 발을 내딛는지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원하는 점수를 받기 위해, 이상적인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서만 달려가는 열정적인 모습은 누군가의 응원과 부러움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성공 이후 가슴을 채우는 것이 허탈함이라면, 우리는 그제서야 직감적으로 느낀다. 자신의 삶이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돌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책에서는 자신의 유일한 생을 돌보는 삶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삶이라 조언한다. 그리고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희망 자체가 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이 천재가 되는 것이라고.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예술에서 개인의 목소리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거대한 담론,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시대를 뛰어넘는 것이 위대하다고 평가받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가 아니 에르노가 쓴 문학작품은 독창적인 이야기와 사실적인 표현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여전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작가의 자전적 체험담을 짧은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 또한 출간 즉시 논란이 많았다.
소설의 작가이기도 한 주인공은 아내가 있는 연하의남자를 사랑한다. 이후 사랑에 빠진 이들이 보통 그러하듯 주인공의 생활은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주인공은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만을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며 상상 이상으로 광기 어린 사랑을 즐긴다. 그 남자와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절하리만큼 무기력한 삶을 살며, 집안 일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는 등 사소한 일상에서도 그와 연결 지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찾는, 중독에 가까운 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그 남자가 떠나버렸을 때, 그녀는 자아를 상실한 듯한 고통을 느낀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이 느끼는 대로 사랑하고, 또 표현하는 그녀를 보며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 혹은 로맨스라는 단어가 진부한 것의 표상으로 떠오르고, 최근에는 ‘밀당의 기술’ ‘썸의 법칙’ 같은 것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세태에 그녀가 보여주는 열정 속에서, 결국 사랑을 진부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비겁하게 만든 건 무엇 때문이었는지 조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찾게 될 거야』 김동영

체력이나 열정 같은 것을 다 소진해버렸을 때 본능적으로 찾는 것들이 있다. 기운을 되찾기 위해 먹는 잘 차려진 한 상이 될 수도 있고, 힘을 주는 존재와의 만남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전부 소용없이 착 가라앉은 마음이 좀처럼 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부터 떠올리게 된다.
‘생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저자는 서른 즈음 방송국에서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는다. 그는 망연자실 할 틈도 없이 가진 것을 모두 털어 미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230일간의 낯선 미국땅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는 새로운 풍경과 사람, 음악, 문화 등을 통해 그 동안 잊혀지고 있었던 솔직한 자신과 마주한다. 그는 여행의 중반 즈음, 뚜렷한 목적지도 대책도 없이 달려온 여행 속에서 설명하기도 애매한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죽을 것 같이 외롭거나 몸이 아프거나 할 때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가면 만날 친구들과 익숙한 곳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고백한다. 자신은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워해야 하고 아쉬워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행기를 통해 우리는 홀로 하는 여행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도 혹은 타국에서 조용히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이방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은 유쾌하든 그렇지 않든 타성에 젖어버린 자신과의 이별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별을 통해 그토록 발버둥쳐도 얻을 수 없었던 가슴속에 어떤 뜨거운 것을 얻게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