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다정하고 상냥한 연결고리

글. 황유진
자료제공. 고래뱃속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인사하던 아랫집 이웃이, 큰아이가 들고 있던 동화책 표지의 까만 고양이를 보고 “우리 까미랑 똑같이 생겼네” 하며 웃었다. 고양이 얘기에 아이들 눈이 쫑긋거리자, 잠시 기다리라 하시더니 자의 집 현관 앞에서 까미를 보여주었다. 정말 새까맣고 얌전한 고양이였다. 며칠 후 아랫집에서 인터폰으로 정중하지만 다급하게 부탁을 해왔다. 갑자기 지방에 내려가야 하는데 아픈 고양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 이틀 동안 챙겨줄 수 있겠냐고. 마다할 리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이틀 간 아침 저녁으로 아랫집에 들러 먹을 것을 챙겨주고 놀아주고 쓰다듬어주었다. 다행히 고양이는 낯을 많이 가리지 않고 곁을 내주었다. 우리를 믿고 맡겨준 이웃에게도, 곁을 내어준 고양이에게도 고마운 순간이었다.
읽고 또 읽는 그림
『모두 모두 한 집에 살아요』는 『사자와 작은 새』 『산으로 오르는길』 등으로 유명한 캐나다 작가 마리안느 뒤비크의 작품이다. 부드러운 색조와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따스한 깨달음을 안겨주는 뒤비크의 글과 그림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웃음을 짓게 할 만큼 매력이 넘친다. 이야기는 아파트 1층에 사는 토끼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오늘은 오빠 토끼의 생일. 저녁에 있을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토끼 가족은 분주하다. 오빠 토끼는 초대장을 쓰고, 아빠 토끼는 집을 꾸밀 소품들을 챙기러 다락방에 다녀오고, 엄마는 생일 케이크를 굽는다. 자잘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파티는 꽤 평화롭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비스코트 거리 3번지에 날이 밝아요. 오늘은 작은 토끼의 생일이에요. 엄마는 작은 토끼가 가장 좋아하는 아침식사를, 여동생은 깜짝선물을 준비했어요.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토끼 가족만은 아니다. 책 속에는 총 여덟 가구의 동물가족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하나하나 상세히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토끼 가족이 생일 케이크를 만들고 있을 때, 여우엄마는 산통을 느끼고, 곰 아저씨는 진찰을 받고 있으며, 고양이 가족은 이삿짐을 나르고 있다. 시끄럽게 뛰어노는 아랫집 아기 생쥐 세 마리 때문에 올빼미 가족은 쉬이 잠들지 못한다. 아파트 내부라는 배경에는 변화가 없지만, 한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함께 펼쳐지는 식이다. 아파트 입주민인 동물 가족외에도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특히 아기돼지 삼형제, 빨간 모자 소녀,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 등 구석구석 숨어있는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세히 보아야 더 잘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많이 담겨 있는 만큼, 이 책은 보통의 그림책 보다 훨씬 큰 판형을 가지고 있다.
복작복작, 우리는 이웃
비스코트거리 3번지에 사는 가족들은 자신의 집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웃들이 모두 나와 이삿짐 나르는 고양이 가족을 도와주고, 아기를 낳으러 간 엄마 여우는 작은 여우를 토끼 가족에게 맡긴다. 고슴도치는 수프를 끓여 아픈 곰을 방문하고, 모든 이웃이 오빠 토끼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관계 맺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들 사이에 넘쳐흐르는 다정함이 자못 반갑다.
파티는 끝났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작은 토끼는 곰 아저씨네 집에 들러서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눠 드려요.“선물 고맙습니다.”즐거운 생일을 보낸 작은 토끼가 말해요.
8년간 살던 아파트에서는 아이들 덕분에 많은 이웃을 사귀었다. 특히 옆집과 윗집에는 둘째 아이의 친구들이 살고 있어 가족끼리 많이 의지하며 지냈다. 마침 집에 식용유가 똑 떨어졌을 때나, 잠깐 집 앞 마트에 다녀오는 동안 아이를 맡길 때도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시골에서 올라온 고구마를 나누던 즐거움도 잊지 못한다. 육아라는 고되고 외로운 시간을 지나며, 친정엄마나 형제 자매보다도 훨씬 더 가깝고 든든한 존재가 되어준 건 다름 아닌 나의 다정한 이웃들이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팬데믹 이후 우리에게 집은 더욱 중요하고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생활 반경이 대폭 축소되면서 이웃과의 교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 숨어든 집은 안락하고 편안하고 안전했지만, 동시에 고립된 외딴 섬과 같았다. 어쩌면 전염병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질병을 확산시킨 장소가 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에게, 어린이 집을 같이 다니는 옆집 친구에게도 한 발짝 더 다가가지 못한다. 함께 있지만 연결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에게 허락된 건 작은 눈인사가 전부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을 읽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했던 시절을 한껏 그리워했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집에 놀러 온 아이 친구들로 복작거리며, 자신의 삶에 기꺼이 서로를 초대하던 때. 때론 불쾌하고, 불편해도 그것마저 함께 살아간다는 온기로 느껴지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커다란 책이 새삼 일깨워준 작은 마음 하나는 온전히 지켜내며 살아가고 싶다.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하는 것이 쑥스럽지 않고, 옆집 아이가 커가고 옆집 노인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상냥하게 지켜볼 수 있는 이웃이 되기를 꿈꿔본다. 그림책을 놓지 않는 말랑말랑한 마음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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